'거리에서'
옅은 빛의 묵으로 훔쳐낸 풍경 위에 구름이 흐르고, 조용한 배경에는 잎을 훑어낸 나무가 서 있다. 신선이 사는 어디, 무릉도원의 고즈넉한 사물들이 모여 이룬 이미지는 다름 아닌 '도시'다.

여태, 도시를 꿈꾸는 예술은 많았다. 비슷한 주제의 전시는 매 달 빼놓지 않고 전시 일정에 스쳤고 드라마들은 작정하고 도시의 세련미를 뽐냈다.

귀에 익은 클래식을 모아 놓은 앨범이나 가볍게 즐길 만한 연주 음반들은 꼭 '도시'나 '현대'의 이름을 빌렸다. 이들이 그리는 도시는 세련되고 감각적이나, 때로 잔인했다.

작가 박성식의 <도시사유> 전 속 도시 이미지에는 난데없는 여백의 미가 살아 있다. 먹의 농담을 따라 붓으로 건설된 건물들은 사람들이 빠져나갔다기보다 원래 살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고, 그 자체가 고즈넉한 풍경으로 읽힌다.

우리가 도시에서 현대인을 떼어놓고 그저 풍경으로 바라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도시사유> 전은 도시를 다시 돌아볼 때 흔히 사용되는 '청정 도시' 류의 이질적인 합성어에서 벗어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를 한발 떨어진 풍경화로 바라보도록 유도하고, '우리, 여기의, 도시'를 함께 느끼게 한다.

'아득하다.' 작품의 제목처럼 뿌연 구름 뒤에 서 있는 건물은 청초하다 못해 아득하고, 심지어 그리움의 감정까지 심어준다. 한결 같은 화풍과 기품 있는 기법은 여태껏 도시가 지니고 있던 오해의 이미지를 벗겨주기에 충분하다.

5월 4일부터 5월 13일까지. 미술공간현 02)732-5556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