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단청 역시 저의 진가를 알아주는 주인을 만나야 우주의 색을 품는다. "목수와 같은 특화된 직업은 나무들이 내뿜는 기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들을 어떻게 표현해낼까.
나무의 결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매끄럽게 다듬어진 작품은 목수가 공들인 가구 같으면서, 자개로 표현된 의 모습은 단정한 여인처럼 곱다. 봄을 알리는 벚꽃의 흐드러짐은 오묘한 단청의 색 아래서 조용하고 화려하게 제 본분을 다한다.
잘 다듬은 목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값어치를 하고, 자개는 흐트러지지 않고 산란한 빛을 내며, 단청은 제 색을 또렷하게 유지한다. 주제와 재료를 잘 이어나가는 것에 성공한다면 관람객의 마음을 얻기도 어렵지 않은데, 작가 김덕용은 이를 잘 이해했다. 여기에 작품의 이미지가 주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합쳐지면 금상첨화다.
오래 단단하게 서 있을 나무 책들은 '그들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말간 달항아리를 다시 나무에 새겨 넣은 작품은 나무의 충실함과 달항아리의 아담함으로 옛 것의 깔밋함을 그대로 전한다.
<시간을 담다> 전은 작가의 여덟 번째 개인전으로, 현대 갤러리와는 첫 인연이다. 야물게 맺은 마감을 따라가면, 재료와 주제를 대하는 작가의 정갈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옛 역사의 시간과 작가 개인의 기억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4월 20일부터 5월 15일까지. 갤러리현대 강남. 02)519-080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