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애경 씨, 책 '북유럽 디자인' 세계를 매혹시킨 북유럽 디자인 정신 소개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 디자인은 북유럽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다. 긴 겨울을 실내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햇볕과 야외 풍경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디자인이 발달했다.(C) Artek
저렴하면서도 센스 있는 조립식 가구 이케아(IKEA), 트렌디하지만 어딘지 무심한 느낌의 패션 브랜드 H&M, 지난 겨울 전 세계 거리를 휩쓴 눈꽃송이 패턴, 깨진 달걀 모양으로 몸을 편안히 감싸는 아르네 야콥스 디자이너의 에그 의자...

북유럽 디자인이 전세계를 매혹하고 있다. 단지 독특한 외양 때문만은 아니다. 간결하고 솔직한 디자인 철학이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어서다.

핀란드에서 디자이너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안애경은 최근 북유럽 디자인의 가치와 힘을 설명하는 책 <북유럽 디자인>을 냈다. "북유럽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곳의 공통적인 사회와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에서 찾은 북유럽 디자인의 비밀.

오랜 삶 속에서 쌓인 북유럽 디자인의 지혜

북유럽 디자인의 힘은 그것이 북유럽 역사와 사회의 축적물이라는 데서 나온다. 안애경은 자연과 전통이 기반이 된 일상 문화가 북유럽 디자인의 지혜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기차역 대합실의 구조물. 사용자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갖게 하는 공공 디자인이다. (C) Artek
"북유럽 사회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하는 철학을 몇 세대에 걸쳐 이어 왔다. 그 결과 북유럽 사람들의 생활에는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담겨 있으며, 이를 현재와 미래의 세대들을 위해 지켜 나가고자 하는 노력도 스며 있다."

북유럽 디자인에서는 자연이 빚어내는 유기적 형상들이 반영된 사례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최근 매우 인기 있는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 디자인에는 자연과 공존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 넓은 창, 밝은 톤의 마감재, 나무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소박한 형태의 가구들로 대표되는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 디자인은 긴 겨울을 실내에서 보내야 하는 삶에 최적화된 것이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지은 노르웨이 산골의 가옥들은 전통적 생활방식을 보존하고 있다. 지붕은 나무 천장 위에 자작나무 껍질을 깔고 흙으로 덮는데, 그 위에 자연스럽게 풀이 자라게 된다. 열전도율이 낮아져 겨울을 지내는 데 도움이 된다. 그곳의 주민들은 정원뿐 아니라 지붕도 틈틈이 가꾸어 주어야 한다.

"직접 삽과 곡괭이를 들고 집을 고치고 정원을 가꾸는 일은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사람들은 기회만 되면 직접 흙을 만지고 식물을 키우는 노동에 참여한다. 그 노동의 즐거운 가치를 스스로 경험하려고 한다."

피스까스라는 정원용 도구 브랜드는 이런 북유럽적 생활방식이 반영된 디자인 사례다. 간소하고 친근한 인상의 도구들은 일상 속에 살아 있는 디자인이다. 피스까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오렌지 컬러는 다른 도구들과 쉽게 구별되도록 하는 표지다.

자연과 인간, 기술을 잇는 디자인

천혜의 자연환경은 나무의 풍부한 활용을 낳았다. 나무의 재료적 특성을 잘 살린 소품과 가구들은 북유럽 디자인을 대표한다. 나무를 다룬다는 것은 자연은 물론, 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시대부터 이어져 온 공예 기법을 다룬다는 뜻이다.

디자이너 카이 보예센의 목각 인형들은 직접 나무를 깎아 장난감을 만들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인기를 끌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섹토 디자인의 조명 프레임은 나무 바구니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 자작나무 특유의 온화한 색과 결이 세련된 디자인을 만났다.

"인간을 배려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공예 정신은 디자이너로 하여금 사물의 가치를 보는 시각을 넓히고 디자인에 휴머니티를 담아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안애경의 지적은 현재 북유럽 디자인의 유행이 복잡하고 각박한 문명에 대한 저항적 움직임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북유럽 디자이너들 중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며 영감과 기술을 얻는 이들이 많다. 목수이자 디자이너인 까리 비르따넨은 직접 낡은 농가를 개조하고, 텃밭을 일구며 산다. 그의 가구에는 이런 삶의 경험이 녹아 있다. 절제된 디자인은 소박한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인위적인 데가 없어 사용자를 안정시킨다.

삶의 터전에 대한 애정 역시 디자인의 원천이다. 노르웨이의 고급 텍스타일 브랜드인 올레아나는 특별한 철학을 갖고 있다. 수많은 생산업체들이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때, 올레아나는 지역에 뿌리를 내린 생산 체계를 고수했다.

지역에서 나는 질 좋은 천연 섬유인 메리노 울, 실크, 알파카를 이용하고, 주민들의 전통과 기술에 적절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여 왔다. 전통 복식의 재료와 패턴, 숙련된 기술자의 수작업을 이어받되 현대적 기술로 가공하는 올레아나의 제품들은 고가 디자인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기능주의와 사민주의의 토양

북유럽 디자인에 대한 소비는 곧 북유럽적 삶의 방식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안애경은 북유럽 디자인의 바탕이 된 사상으로 기능주의와 사민주의를 꼽는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활발하게 퍼진 기능주의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디자인을 아름답게 여기는 태도를 낳았다.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디자이너들이 사회적 책임을 직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는 예술적 감성을 지닌 디자이너가 자유로운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해준다. 디자인의 본질이 인생을 즐겁게 하고 더욱 편한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면 다양한 이웃 사람들 모두를 배려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북유럽 디자이너들은 이 같은 사회환경에서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책임감 있는 디자인 영역에서 겸허하게 일을 하게 된다."

따라서 북유럽 디자인은 디자이너와 사용자 간의 지속 가능한 대화이기도 하다. 북유럽 디자인의 상당 부분이 노동 현장과 노동자를 고려한 것이다. 안전하고 능률적인 노동을 위한 디자인이기 때문에 화려하기보다 기능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에도 선보인 텍스타일 브랜드 마리메꼬의 옷들도 실용적인 활동복에서 출발했다. 줄무늬 패턴의 옷들은 핀란드에서 최초로 출시된 유니섹스 디자인이자 일터에서 입기 편한 단체복이었다. 현대 핀란드 사람들은 이 옷들과 함께 추억을 되새긴다고 한다.

모두가 평등하고, 자연 앞에 겸손한 디자인 철학

다양한 사람들이 동등하게 공유하는 디자인의 철학은 공공 디자인 영역에서도 잘 드러난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벤치와 표지판, 공공 시설들은 '유니버설 디자인'의 표본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길을 제시하는 공공 디자인 사례들은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노르웨이의 관광지에서 건축 디자인은 자연 경관을 그대로 둔 채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보조적 역할로 도입된다. 주변과 어울리는 재료를 사용하고 불필요한 구조물은 설치하지 않아서 관광객들의 자연을 즐기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눈에 두드러지지 않는 디자인, 빼어난 자연 경관을 감상하도록 배려한 건축 디자인을 보며, 자연 앞에서 인간은 그렇게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디자인은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들고 개발하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데 더 큰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안애경의 말처럼 삶의 도구가 되는 것을 넘어 삶의 철학을 제시하는 디자인은 획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으로, 사회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북유럽 디자인이 이 시대에 주는 교훈도 바로 그 점이다.

"디자인이란 때로 인간이 지켜야 할 질서라는 생각이 든다. 규제하거나 규제받지 않는 자율적인 질서, 그리고 그 질서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회를 이어가는 원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자연에 이미 그 질서가 존재한다면, 인간이 감히 손댈 수 없는 가치가 이미 그 안에 있다면, 자연은 디자인에 우선하는 것이 아닐까?"

북유럽 디자인의 여운은 깊이 남는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