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롤렉스'
타 장르와의 맥락 없는 융합이 '퓨전'으로 용서받는 오늘, 재해석과 새로움은 한정적인 이미지에 갇힌다. 장르 간의 만남과 이를 표현할 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가에 한해서.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전은 어떨까.

북한산의 파노라마 풍경을 지극히 동양적인 화풍으로 담아낸 작품의 이름은 '한 바퀴 휙'이고,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플레이보이지의 모델은 회반죽과 뒤엉켜 무너진다.

상반된 이미지들이 만나 서로의 상징을 무너뜨리고, 여기서 '재해석'의 의미가 빛난다. 40년 동안 재해석에 매진해 온 작가는 가벼운 퓨전과 그 맥을 달리한다.

안견의 '몽유도유도원도(夢遊桃園圖)'나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앞에 입체적으로 쌓인 레고 블록들은 의외의 새로움을 빚어내고, 이는 동양화가 가지고 있던 정적인 이미지를 '기운생동', '몽유'의 이미지로 치환한다. 기아, 전쟁고아, 어린이 성범죄 등 아동 문제를 다룬 보도 사진을 재해석한 '플라 차일드' 시리즈는 미술 작업과 세계문제를 결합했다.

작가 황인기의 오랜 작품 일생을 돌아보니 80여 점의 작품이 모였다. 개인전으로서는 퍽 큰 규모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대표 작가 로 선정됐다.

이번 전시는 "시대를 꿰뚫는 날선 시선으로 동시대 사회 문제와 물질 중심 문화의 단면을 추적하는 작가의 치열함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한다. '내일이 되면 어제가 될 오늘.' 그러니 오늘은 얼마나 덧없는가. 그러니 오늘을 찬란히 빛내기 위해 손에 든 물질이, 무색해진다.

5월 3일부터 5월 29일까지. 아르코미술관. 02)760-4608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