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봄'
수채화, 수묵화처럼 그 기법의 이름에서부터 물을 머금은 그림은 그리움을 돋운다. 그 선이 아련해서, 그 빛이 희미해서 관람객은 저 너머의 확실한 풍경을 더듬게 되고, 더듬는 행위는 상상을 부른다.

상상은, 언제나 그리움을 낳는다. 빛 바랜 화풍은 긴 시간의 간극을 담은 듯 보이다가도, 찰나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순간의 이미지로 읽힌다. 방바닥을 바르는 데 쓰이는 '장판지'와 신문을 이용한 수묵화는 재료로써 우리의 삶을 나타내고, 모시와 견 위에서 옷감의 결을 살린 수묵화는 재료와 작가의 상생을 보여준다. 여러 겹 덧댄 한지는 섬세한 분위기를 높인다.

숱한 사건을 담은 신문 조각 위에, 수묵을 입힌 장판지를 켜켜이 올리는 작업은 사건의 수다스러움을 막으면서도 그 존재를 분명하게 의식할 수 있게 한다. 평론가 김혜경은 이를 두고 "치밀한 시간의 기록도 목청 높은 사건의 증언도 아닌 침묵에 가까운 고요함을 느끼게 하는 화면은 마음 저편에 머무는 심상의 풍경이요 무심한 순간의 포착"이라고 말했다.

작가 최진주의 어디에 가 닿지 못한, 분명하지 않은 이미지들은 각기 다른 텍스트를 생산하고, 이는 관람객에게 각기 다른 언어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뭉근한 붓질과 물을 한껏 머금은 색채는 조용히, 그러나 조밀하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든다.

대지와 섬, 흘러간 시간 등에 주목하여 작업을 이어온 작가는 이번 <그리움을 이야기하다> 전으로 아홉 번째 개인전을 맞는다. 이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수묵 기법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그리움'을 선물하고, 스스로의 기억을 되돌아 볼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5월 11일부터 5월 17일까지. 갤러리 송아당. 02)725-6713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