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옥 화가
꽃이 만개한 '절정'의 순간은 얼마나 아름답고, 또 얼마나 슬픈가.

꽃은 가장 화려하게 피었을 때 이미 낙화라는 숙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은 태어나 전성기를 보내고 노후를 맞는 인생과 닮았다.

자연의 꽃에서 그런 인생의 의미를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만한 삶의 경륜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조의 여유가 따라야 한다.

화가 박현옥(56)의 꽃에는 그러한 인생의 무게와 향이 담겨 있다. 이는 박 화가의 남다른 화업에 기반한다. 그는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다 40대에 교수직을 접고 '2막 인생'을 미술로 열었다. 시작이 늦은 만큼 열정적으로 작업에 매진했고, 다양하게 축적된 세월의 경험은 화업의 깊이를 더했다.

박 화가의 조형 대상들은 자연이다. 초기에는 인물을 그렸으나 직설적인 화법이 거슬려 자연으로 나아갔다. 자연에는 다양한 대화의 상대가 있고 만화경 같은 인생의 굴곡도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꽃 열 셋'
그는 자연에서 인생을 본다. 그의 손길을 따라 피어난 자연은 사실성에 초점을 맞춘 자연의 외피가 아니라 심의적 시각으로 보고 느낀 심상의 자연이다. 화려한 꽃들이 어우러진 산에 은근한 적막함이 배어나고 바람의 소리를 전하는 꽃들의 흔들림, 한 쌍의 부부, 연인처럼 서 있는 소나무 등은 박 화가 풍경화의 특징으로 문득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

"꽃과 나무와 풀, 그리고 바람과 대화를 합니다. 그들의 묵언은 나에게 돌아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죠."

자연은 작가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을 보게 하고, 세상을 관조하게 한다. 자연은 그에게 벗이자 스승이다. 작가는 이런 자연을 만인에게 소개한다. 박 화가는 지난 5월 11일부터 서울 경운동 장은선갤러리에서 활짝 핀 장미꽃을 비롯해 히아신스, 능소화 등을 선보이고 있다.

물감을 두툼히 쌓아 질감이 두드러진 꽃들은 막 피어나 진한 향을 내뿜는 듯하다. 만개한 장미는 화려하고 더없이 아름답다. 가장 절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작가는 그래야 화려한 꽃의 숭고한 낙화를 떠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생과 사의 경계에서 꽃의 극한을 보여주는 것이 인간의 실존을 묻는 듯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는 늘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보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는 꽃이야말로 생명력과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작품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교류, 즉 소통이라고 한다.

'꽃 일곱'
"작업을 하면서 자연과 자연, 자연과 사람의 소통을 생각해요. 자연과 인간은 삶을 공유하고 있잖아요."

그러고 보면 박 화가에게서 자연과 인간은 서로의 분신처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셈이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내면과 삶의 풍정이 느껴지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조화시켜 그리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들이 생동감, 생명력을 실감나게 느끼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박 화가의 자연주의는 자연과 인간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 대화하는 과정의 산물로 등장한다. 그가 자연의 무엇과 또 어떤 대화를 하는 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시의 한 구절처럼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는 박 화가의 꽃은 5월 21일까지 만날 수 있다. 02)730-3533

유선태 개인전 <말과 글 - 자전거 타는 사람: 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다> 전
'예술의 숲'으로 떠나는 여행

사유의 시간과 초현실적인 공간의 이미지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구현해 온 유선태 작가의 개인전 <말과 글 - 자전거 타는 사람: 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서울 종로구 평창도 가나아트센터에서 5월 29일까지 열린다.

'꽃 열 넷'
이번 전시에는 일상 속 가까이 있는 사물의 존재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일깨우고 잃어버린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50여 점의 회화와 10여 점의 조각을 선보인다.

그 동안의 '말과 글' 시리즈가 동양적인 정서를 가지고 서양화의 기법을 사용하는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이번 전시작은 일상적인 풍경, 체화된 그림 속에서 사물의 의미와 개념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구현한 작품들이다. 형식적으로 인지하고 스쳐가는 사물과 세계, 풍경의 이면, 그 너머의 직감적이고 본능적으로 어우러진 감성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명화를 차용해 재해석한 '예술의 숲'을 통해 예술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것은 파블로 피카소,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등 서양의 명화와 강희안, 신사임당, 정선 등 동양 고전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는 자전거로 상징되는 노동집약적 예술활동을 통해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들고자 하는 작가의 자아를 반영한 것이다.

작품에는 사과, 책, 액자, 사다리, 거울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이런 오브제는 모두 상징성을 띤다. 가령 사과는 인간이 행한 저항의 의미를 지닌 아담과 이브의 사과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윌리엄 텔의 사과, 중력의 법칙을 보여준 사과 등 다양한 의미를 상징한다.

박미연 큐레이터는 "이런 오브제들이 추상적 배경 안에서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묘한 균형점을 찾는 작업은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준다"고 설명했다.

'말과 글 - 아뜰리에 풍경' 2011
작가에게 중요한 영감이며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온 오브제는 삶과 죽음 사이를 가로지르는 윤회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상징물이다. 최근의 '말과 글' 시리즈에서는 오브제와 지나온 작업들이 풍경 속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데, 이는 현재의 작업 속에 지나온 것들이 순화되고 재구성된 결과이다.

체화된 예술을 통한 내적 경험을 다시 오브제와 화폭에 담아내는 이번 전시는 예술을 통한 감성의 환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02)720-1020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