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기업과 환경오염10년 이상 무책임 형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와 묘하게 겹치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
진해 죽곡마을은 대기업이 일으킨 환경오염으로 인한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다시금 이슈가 되는 이곳은 STX조선 본사가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네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글로벌 조선업체인 STX조선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친환경 선박 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정작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서는 10년 이상 부도덕한 행태로 일관해오고 있다.

지난 12일, 경남 CBS에서 취재한 바에 따르면, 죽곡마을은 현재 120여 가구에서 260여 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STX조선에서 약속했던 이주 보상이 지켜지지 않아 심각한 질병과 주거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날아오는 쇳가루와 페인트, 날림먼지로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이며, 밤낮으로 들려오는 소음과 진동은 소음방지벽도 무용지물로 만든다.

2008년 환경운동연합에서 발표한 '마산시 수정지구에의 STX 공장유치 반대 성명서'에도 STX조선의 환경오염 폐해는 드러난다. "STX조선 본사가 있는 진해 죽곡동은 '조선소 유치 반대 사례집'과도 같은 곳이다. 이미 진해 죽곡동은 쇳가루 마을이 되었으며, 인근 지역 횟집단지인 수치마을은 상권이 붕괴되었다."

지난 2003년 환경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죽곡마을은 이미 주거기능을 상실했다. 주민의 70%가 어업에 종사해왔지만 이마저도 괴멸 지경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STX조선은 2005년 국가산업단지 진입도로 개설과 관련해 이주대책 수립을 약속했고 2008년에도 이주와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민들과의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실화를 바탕으로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와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실존 인물인 싱글맘 에린 브로코비치는 어렵사리 법률회사 말단 직원으로 취직한다. 1992년, 그녀는 서류정리 도중 발견한 의료기록을 통해 전력사업을 하는 대기업 PG&E 사의 환경오염 실태를 파악하게 된다.

이 회사 공장은 인구 650명이 사는 힝클리 마을에 크롬 성분이 있는 오염물질을 대량으로 방출해 수질을 오염시켰고, 이로 인해 주민들은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려왔던 것. 마을의 집을 순회하면서 600명 이상의 고소인 서명을 받아낸 그녀는, 대형 법률회사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4년간의 소송 끝에 PG&E 사에 대해 엄청난 배상액 지불 판결을 이끌어냈다.

에린 브로코비치의 정의실현이라는 목표에 대한 지치지 않는 신념과 수많은 방해에도 꺾이지 않는 집념, 여기에 지난하고 고달픈 과정이지만 법률회사와 법원 당국 본연의 존재가치를 증명한 판결이 어우러져 영화 같은 결실을 현실에서 맺게 된 것이다.

다시 우리의 현실인 진해 죽곡마을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또 다른 에린 브로코비치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에린 브로코비치가 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