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heres part I'스마트폰 이용 6개 공연장 찾아 다니며 지정된 음악 듣는 프로젝트

문래예술공장의 옥상에 서자 연주가 시작된다. 이어폰을 따라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마침 바람이 분다. 또박또박한 피아노 음 사이로 나무들이 흔들린다. 마침 기차가 지나간다.

정갈한 멜로디 위에 금속성의 규칙을 얹어 놓는다. 기차가 사라진 길 끝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면 철벽 같은 아파트 숲이 눈을 막는다. 잠깐 고요한 틈을 타 스스로 묻는다. 여긴 어디지. 음악이 끝나면 스마트폰은 다음 장소로 관객을 데려간다.

미술작가 장민승과 작곡가 정재일이 함께 작업한 'spheres part I'은 관객을 서울 문래동 곳곳의 소리 풍경으로 안내하는 프로젝트다. 애플리케이션 'spheres in mullae'를 내려 받으면 스마트폰이 길잡이이자 연주자가 된다. 지도를 따라 골목과 버스 정류장, 공원 등 6군데의 '공연장'을 찾아다니면 각각의 장소에 지정된 음악이 들려온다.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철공소 골목, 넓은 차도 한가운데 버스 정류장, 쉴 곳과 놀이터가 있는 동네 공원 같은 일상적 공간들인데, 음악과 동행하면 특별해진다.

여백이 많은 음악은 주변 소리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끌어들이고, 품는다. 철공소의 기계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관객 자신의 발소리에까지 새삼스럽게 귀 기울이게 한다. 지금 들린 소리의 출처가 이어폰인지 뒤인지 알 수 없어 흘깃 주위를 둘러보는 일도 일어난다.

"극장이나 개인적 장치를 넘어서는 음악적 체험이 어떻게 가능할지 생각해 봤습니다. 철거 중인 옥인시범아파트 내부를 찍는 사진 작업을 했었는데, 그때 밖에서 넘어 오는 수성동계곡 물소리를 듣고 잊었던 기억이 떠오른 일이 있어요. 그 경험을 이 공간에 적용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장민승 작가의 말처럼 이 프로젝트는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감상"이다. 주변 소리와 더불어 자신의 내면을, 기억과 감성, 자연스러운 속도와 미뤘던 고민을 찾아다니는 여정. 걸을수록, 문래동의 낯선 거리에 익숙해질수록 이상하게도 몸 안쪽이 넓게 펼쳐지는 느낌이 든다. 다리에, 귀에, 피부와 마음에 자신만의 문래동 지도가 그려진 것이다.

'spheres part I'은 5월 16일부터 7월 17일,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참여하는 것을 권장한다. 추천 시간은 저녁 7시 이후 밤 시간대다. 인적이 드물고 소리가 정돈되어 집중할 수 있다. 밀폐형 이어폰보다는 개방형 이어폰이 적합하며, 스마트폰은 약 70분 정도 켜 놓을 수 있도록 충전해 와야 한다.

아이폰 사용자는 애플 앱스토어의 '여행' 카테고리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찾을 것. 출발점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1가에 있는 서울시 창작공간 문래예술공장 옥상이다.

'spheres part I'은 작년 문래예술공장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인 'MAP'의 지원작이다. 작가들은 앞으로 이 프로젝트를 다른 건축물, 다른 지역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음악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경계는 어디에나 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