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표 근대극 개인 삶의 초점 맞춰 첫 공연

연극 '키친'
영국 근대극의 대표작인 아놀드 웨스커의 <키친>이 국내 처음으로 공연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로얄 코트 극장에서 1959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30명에 가까운 출연진과 주방을 그대로 재현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50여 년이 넘어서야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티볼리'라는 영국의 큰 레스토랑의 주방을 배경으로 하는 이 연극에서 주방은 그 자체로 인간 사회이자 삶의 축소판이다. 요리사, 웨이트리스, 재료 운반 포터까지 30명이 넘게 일하는 대형 식당 티볼리에는 영국인 외에도 독일, 프랑스, 아일랜드, 키프로스, 그리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 출신의 요리사들이 모여 있다.

주방의 일상이란 예상대로다. 요리사들은 자신의 조리대에서 생선을 튀기고, 스테이크를 굽고, 채소를 다듬고, 빵과 디저트를 만드는 등 자신이 맡은 일로 바쁜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국적도 언어도 다른 요리사들은 그 바쁜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다투고 갈등한다. 출신만큼 다양한 외국어들이 오고가고, 그러면서 상대를 헐뜯고 조롱하다 급기야 서로의 나라까지 비방한다. 언뜻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설정이다.

간밤의 싸움 이야기를 하며 출근하는 1막의 첫 장면은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잠시 후 이어지는 등장인물들 간의 반목과 '미칠 듯이' 바쁜 업무시간은 아비규환을 떠올리게 한다.

신기한 것은 다른 언어와 민족성 때문에 대립하는 요리사들이 이 바쁜 시간 동안에는 기계처럼 일사불란한 호흡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마냥 시끄럽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가능한 최소한의 소통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결국 신입 요리사의 절규로 끝나는 1막 후 관객은 이 정신없는 상태가 이어지지는 않을까 우려하지만, 2막에서는 주방에서 살아가는 요리사와 웨이트리스들의 사정이 다뤄지며 본격적인 소통과 이해의 문제로 돌입한다.

결국 으르렁대기만 하던 요리사들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털어놓으며 교감을 나누고 화해하는 과정은 불통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소통의 희망을 제시한다. 원작에서는 노동자와 고용주의 갈등 구조를 주축으로 영국사회의 시대상을 담아낸 반면,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 점이 차이점이다.

"소통이 안 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해왔다"는 이병훈 연출가는 "주방이라는 고되고 힘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시도하고 꿈을 꾸면서 살아가려 애쓰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재단법인화한 국립극단이 <오이디푸스>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이번 정기공연은 6월 1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