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린형향로' 등 중국 미술의 황금기 보여줘

'청동기린형향로', 청대
지난해, 한·중·일의 춘화를 당대 생활상이 드러난 '풍속화'의 관점에서 바라본 'LUST'로 이목을 끈 화정박물관. 올해는 중국 공예 소장품으로 관람객들을 찾아왔다. 한빛문화재단과 화정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의 명·청대의 공예품 100여 점은 단순히 다양한 생활용품이 아닌, 의·식·주라는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소개된다.

도자기, 금속공예, 목공예, 상아, 그리고 복식 등이 과거 유산이 아닌 실생활에 밀착해 당시 생활상은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간 명·청대의 문화예술에 관한 전시는 시대별이나 혹은 종류 별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아 색다른 관람 방식이 흥미를 돋운다. 화정박물관의 조희영 학예연구원은 "실제로 사용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카테고리를 나눠서 전시하면 더 전달하기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명·청대의 공예예술은 중국미술의 황금기라 불릴 정도로 화려했던 시기로 꼽힌다. 특히 경제적으로 크게 풍족했던 청대의 공예품은 화려함의 정점을 찍으며 완성기에 도달한 시기다.

서구와의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면서 중국에 없던 상아와 목재, 유리, 크리스탈, 직물 등이 수입되었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과 그로 인한 다양한 자극이 더해지면서 공예품의 형태나 재질 역시 복합적으로 변해갔다.

'청화전지문돈', 청대
문양과 장식기법은 하나의 재질에 갇혀있지 않고, 서로 공유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 점이 이번 전시 구성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곧 재질을 넘나드는 공예품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확장해가는 방식이다.

도자에 나타나는 법랑, 금속기의 칠보기법 유물을 함께 진열해 도자기와 금속기라는 서로 다른 소재로 만들어진 공예품의 관계를 읽어내고 이것을 사용했던 계층과 용도를 유추해간다.

사람이 사는 공간을 일컫는 '주(住). 이번 전시에서는 그 공간을 채웠던 생활용품이 자리했다. 마치 두꺼비처럼 생긴 '청동기린형향로'는 방울처럼 생긴 경첩을 돌려 목을 젖히면 향로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드러난다.

당시 중국의 전설 속의 동물이었던 기린은 문헌에 '머리에 뿔이 하나 있다'고 쓰여져 있어, 머리 위에 뾰족하게 솟은 꼭지를 통해 이것이 기린을 형상화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도자기는 식기나 장식품으로만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에는 도자기로 만든 의자도 있었다. '청화전지문돈'이 그것으로, 도자기가 실생활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되었는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유물이다.

'은제비취모감석관식', 청대
한편 상아가 수입되었던 청대에는 이를 재료로 한, 뿔 조각이 성행하기도 했다. 원통형의 상아를 그대로 활용해 필통이나 인물상이 다량 제작되었다. 이들 생활용품이나 도구의 문양은 당시 회화에서도 유행한 그림이 새겨진 경우가 많아, 조각과 회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복식에는 실용성과 장식성이 적절하게 더해졌는데, 의복과 장신구를 통해 당대의 미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은제비취모감석관식'은 여자의 머리 장식이다.

산호, 옥, 진주, 호박 등의 보석이 화려하게 달려있는 이것은 좌우 길이가 12츠 정도로 머리를 완전히 덮는 것은 아니었다. 한쪽 머리에 장식하면 양쪽에 달린 보석들이 흔들리면서 화려함을 더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려진 그림에 이 장식을 쓴 여인이 등장해 실제 착용한 모습이 충분히 짐작된다.

식생활에 사용했을 나전칠기와 도자기, 법랑 등은 청대의 경제적 풍요만큼 디자인과 색채의 아름다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법랑주자와 여러 개의 잔이 한 세트로 제작된 '법랑화훼문주자'는 사이즈가 작아서 다기로 활용되었으리라 추측된다. 금속으로 만들어 유리 유약을 발라 견고한 법랑은 여전히 그 견고함을 자랑하며 새것처럼 빛난다.

구절판처럼 여러 가지 식재료가 담겼을 '팔선문화형척홍합'은 지금도 익숙한 디자인이다. 나무로 형태를 잡고, 그 위에 칠액을 발라 굳혀 문양을 그려 넣은 칠기의 일종으로, 이것은 수백 번의 칠액을 바른 그릇이다. 바르고 말리기를 반복해 칠액이 두꺼워지면 그 위에 조각을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청대에 칠공예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법랑화훼문주자, 청대
청대의 도자공예는 색깔 역시 다채로웠다. 붉은색과 연두색으로 촘촘하게 문양이 그려진 '오채화초문주자'가 당시의 화려했던 도자공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채는 백자보다 낮은 온도에서 구워지는데, 자주 사용하면 안료가 벗겨져 그 닳아 있는 부분을 통해 용도가 짐작된다. 당시에는 도자기가 귀해 필요가 없거나 깨졌을 때도 용도변경을 하거나 고쳐서 사용했는데, 그럴 경우엔 금속을 덧대기도 했다. '오채화초문주자'는 손잡이와 주전자 입에 금속이 덧대어져 있어 그 이유를 유추해보게 한다.

화정박물관에서는, 2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의·식·주' 전과 관련 전시로 '중국의 인물화'와 '중국회화소장품' 전시도 함께 열린다. 당대 사회의 분위기와 상황이 다각적으로 반영된 이들 관련전시를 통해 중국 공예품에 대한 이해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내년 2월 29일까지 이어진다.


'당오학사도 唐五學士圖', 작자미상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