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문화 대변 '무지개 정신' 재확인

영화 '마린 스토리'
국내 유일의 성소수자 영화축제인 서울LGBT영화제(SeLFF)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보다 대중적인 행사로 거듭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가 집행위원장을 맡은 이번 행사는 김태용 감독과 영화배우 소유진을 각각 집행위원과 홍보대사에 위촉하는 등 일반관객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영화제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무지개빛 매력 함께 즐

서울LGBT영화제는 2001년 '퀴어문화축제'의 일환인 '무지개 영화제'에서 시작되었다. 무지개는 성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소수자인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들의 문화를 대변한다.

퀴어 코드로서의 무지개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여기서의 6색깔 무지개는 삶(빨강), 치유(주황), 태양(노랑), 자연(초록), 예술(파랑) 그리고 영혼(보라)을 뜻하며, 추가된 핑크색은 고통스런 과거를 극복한 성소수자의 재기발랄한 모습을 의미한다. 또 이런 각양각색의 색깔 이면에는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려는 성소수자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영화 '아이즈 와이드 오픈'
2007년 무지개 영화제에서 명칭을 바꾼 서울LGBT영화제는 해마다 성장을 거듭하며 성소수자들의 삶과 욕망을 다양하게 조망해왔다.

특히 퀴어영화의 상영 기회를 확대하는 한편 제작의 질적 향상에도 힘을 실으며 영화적 다양성에서도 기여했다. 영화 외적으로도 '무지개 정신'을 실천했다.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억압받는 모든 이들과의 연대 운동이 그 정신에서 나왔다.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행사는 이 같은 '무지개 정신'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너의 색을 밝혀라! Color of Your SeLFF'라는 슬로건은 이런 영화제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체성을 밝히라는 권유이기도 하지만, 모든 관객들이 이 운동에 함께하자는 연대의 제안이기도 한 것이다.

LGBT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더 많은 대중 관객을 포섭하려는 의지가 담긴 만큼, 새로운 10년을 모색하는 올해 서울LGBT영화제는 도발적인 슬로건인 색에 걸맞게 새로운 섹션을 도입했다. 영화제가 주목하는 작품을 보여주는 '핫 핑크 섹션'과 6색 무지개가 상징하는 의미에 맞는 장르와 소재를 다룬 작품을 모은 '레인보우 섹션'이 그것이다.

영화 '바이올렌의 취향'
올해의 핫 핑크 섹션에서 영화제의 시선은 군대로 향한다. 지난해 미국의 동성애자 군인들을 차별하는 대표적인 악법 'Don't Ask, Don't Tell' 정책이 폐지됐다. <마린 스토리>는 바로 이로 인해 고통받았던 한 해군의 이야기를 그리며 정책의 부당성을 비판한다.

한국의 이야기도 있다. 지난해 '올해의 퀴어영화상'을 받은 강상우 감독의 <백서>는 병역거부로 현재 감옥에서 복역 중인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가 군대 내 동성 간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에 대한 위헌 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지금,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공고한 차별의 상징인 동성애와 군대의 문제를 관객과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색에 따른 분류가 돋보이는 레인보우 섹션에서는 우선 표현수위가 높은 강렬한 영화들을 모은 Red 부문의 <아이즈 와이드 오픈>이 눈에 띈다. 영화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유대인 공동체의 푸줏간 주인과 스물두 살의 학생의 사랑과 고민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공동체로부터의 압력은 그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영화제가 추천하는 것은 평화와 공동체를 주제로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낸 Green 부문이다.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된 하비 밀크를 다룬 극영화 <밀크>가 이 부문의 다큐멘터리 <하비 밀크의 시대>와 함께 상영되며 40여 년에 걸친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지역 사회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해피 엔딩을 담은 Yellow 부문에서는 작년에 <빅 게이 뮤지컬>로 호응을 얻은 캐스퍼 안드레아스 감독의 발랄한 영화 <바이올렛의 취향>이 시선을 모은다.

개막작 '창피해'
반면 새드 엔딩을 담은 Violet 부문에는 올해의 개막작인 김수현 감독의 <창피해>가 기대작이다. 운명 같은 사랑을 하게 되는 여성들의 육체언어와 감각적인 애정사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올해 집행위원장을 맡은 김조광수 감독의 <사랑은 100℃>는 청소년 성장영화를 모은 Blue 부문에서 관객들을 기다린다.

김조광수 집행위원장은 "새로운 영화,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소수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자신의 진정한 색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올해 영화제 내실을 닦은 후, 앞으로 지방에서도 성소수자영화제가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11회 서울LGBT영화제는 6월 2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9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8일 간의 일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