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사물을 모태로 하는 회화 작업을 거부하고 홀로 서기를 결심한 작업들은 종종 추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물을 그리지 않으면서 추상적이지 않은 작업은 도대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이어가야 할 것인가가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작가들은 모태의 변용을 거부하는 대신, 새로운 모태를 창조하고자 한다. 작가 허미자는 오히려 사물을 분명하게 연상시키는 화풍을 통해 '회화 자체'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어떤 의미일까.

안개 속에서 피어난 잎과 꽃을 연상시키는 작업들은 단색으로 처리되어 그 자체가 사물인지, 사물의 그림자인지 명확하지 않다. 더구나 경계선이 없이 뭉쳐져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잎 뭉치는 관람객 스스로 그 경계선을 상상하도록 한다.

형태 이외에 색채, 세밀한 묘사 등 그림에 개입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모조리 제거한 담백한 그림은 자연의 모사를 넘어, "도달해야 할 그곳에 대한 암시"를 준다.

따라서 작가 허미자의 작업은 '넘나듦'으로 묶일 수 있다. 모두 '제목없음'으로 이름지어진 작업들은 사물을 모사하는 듯하다 사물 너머의 세계를 비추고, 그 너머의 세계를 탐닉하며 작품의 선을 따라가다보면 또 다시 사물의 재현으로 회귀한다.

평론가 심상용은 이를 두고 "세계를 이루던 경계들이 직관적으로 완화된다."고 평했다.

전시는 5월 20일부터 6월 10일까지. 갤러리 이마주. 02)557-195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