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무용단 휴머니즘 부재 시대, 나눔 정신 춤극에 담아

부상당한 제비를 묘사하는 모습
파닥파닥, 파다다닥…. 빠르게 날갯짓하는 한 떼의 무용수들. 돌고 뛰고, 일 초에 두어 번씩 상하좌우를 살피는 모습이 그대로 제비를 닮았다.

단순히 제비의 표정만 흉내내는 수준이 아니라 손끝과 시선 처리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결국 인간인 이들은 몇 분 동안의 '빙의'에서 풀리자마자 바닥에 폭삭 쓰러지고 만다.

맹렬히 제비춤을 연습하고 있는 이들은 NOW무용단 단원들. 이날 진행된 장면은 오는 10일부터 이틀간 국립중앙박물관 용에서 공연되는 휴머니즘 춤극 <흥부>의 한 부분이었다.

흥부와 제비 이야기라니, 모두가 다 아는 이 이야기를 춤으로 풀어내는 건 언뜻 무모한 도전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NOW무용단은 왜, 그리고 어떻게 흥부를 무대로 데려왔을까.

왜 다시 흥부인가

흥부와 제비의 2인무
어릴 적 동화책에서 봤던 '흥부'는 그저 착한 존재였다. 권선징악적 교훈에 따라 흥부는 보상을 받고 놀부는 벌을 받았다. 이 메시지대로라면 사람들은 모두 흥부형 인간을 지향해야 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산업사회의 성장제일주의는 놀부형 인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흥부형 인간은 게으르고 패배주의에 빠진 낙오자로 인식시켰다.

'부자 되세요'가 최고의 덕담인 시대는 결국 놀부적 이기주의가 판치는 각박한 세상을 만들고 말았다. 이번 작품을 안무한 손인영 NOW무용단 예술감독의 발상은 여기서 시작됐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은 무엇일까.'

흥부는 이렇게 다시 무대로 끌어올려졌다. 흥부의 재조명은 그동안 전통 콘텐츠의 현대화 작업을 꾸준히 해온 NOW무용단의 행보와도 자연스레 연결됐다. 무용단이 지난해 '서울형 사회적 기업'에 지정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작품화해온 손 예술감독이 사회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둔 결과이기도 하다.

손 예술감독은 이 시대를 구원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콘으로서의 흥부를 표현하기 위해 관련된 구비문학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신동흔 건국대 국문과 교수의 자료가 이 작품의 기초가 됐다.

하지만 아직 흥부 이야기의 계도적인 메시지가 문제로 남아 있었다. 권선징악이라는 교훈만 반복된다면 흥부의 의미가 이 시대에 되살아나기 어렵기 때문. 그래서 흥부와 현대인이 어떤 지점에서 교감하고, 이를 춤으로 어떻게 표현해내는가가 자연스레 춤극 <흥부>의 관건이 됐다.

손인영 예술감독이 직접 동작을 지도하고 있다.
손 예술감독은 여기서 '나눔'이라는 시대정신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무한 이기주의, 그로 인한 불신화. 휴머니즘 부재의 시대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흥부의 나눔 정신 아닐까요." 휴머니즘 춤극 <흥부>의 명분과 작품의 방향이 결정되는 배경이다.

나누면 함께 행복해진다

현대화된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춤극 <흥부>는 기존의 이야기를 흥부와 제비 중심으로 대폭 축소시켰다. <흥부전>이 흥부와 놀부를 대비시킨 반면, 춤극 <흥부>는 흥부와 제비의 동병상련을 전면에 내세운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영상에서 시작되는 공연은 곧 다리를 다친 제비와 고단한 하루를 마친 흥부의 모습을 중첩시키며 두 존재의 애처로운 처지를 설명한다.

이런 과정에서 음악의 활용도 흥미롭다. 묵음 속에서 몸부림치는 제비와, 판소리와 양악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몸을 부대끼는 흥부네 식구들의 모습은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컨템포러리)이다.

제비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무용수들
이어지는 제비와 흥부의 2인무에서는 벌써 이 작품의 주제가 슬쩍 드러난다. 힘든 와중에도 제비를 돌봐주는 흥부의 모습은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라는 것. 특히 이후 이어지는 제비춤은 발레로 대변되는 귀족춤에 맞선 서민춤이라고 할 만하다. 백조의 몸짓을 형상화한 발레가 귀족의 우아함을 연상시킨다면, 빠르고 분절되는 제비의 춤은 다사다난한 서민의 삶을 떠오르게 한다.

제비가 물어온 씨앗에 '인연'이라는 의미가 담기는 대목에선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는 NOW무용단의 정체성이 돋보인다. 씨앗에서 박이 열리고, 그것이 위와 옆으로 퍼지며 주렁주렁 연결되는 영상에선 '호혜성 이타주의'도 읽힌다. 흥부는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위기에 빠진 존재를 구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둘 사이의 인연이 되어 행운을 가져다준다.

'나눔'이라는 씨앗이 가져오는 기쁨의 열매는 박을 타는 마지막 장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공중에서 떨어진 비단으로 무용수들은 춤을 추다 객석으로 내려가 이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말 그대로 '나눔의 춤'이다. 이런 가운데 흥부는 홀로 자유의 춤을 춘다. 마치 나눈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표현하듯.

손인영 예술감독은 "때론 말로 하는 메시지보다 몸짓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시각 이미지의 체험이 관객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며 많은 관람을 독려한다. 나눔의 문화가 절실한 지금, <흥부>는 춤을 통해 '나눔의 다단계'를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NOW무용단을 대변하는 공연이 될 듯하다.


비단춤의 한 장면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