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SHOW & THE WINDOWS'소비문화 상징하는 공간, 9명의 사진작가 각자의 해석으로 채집

신정룡, '서울시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루이비통'
번영과 풍요를 약속하는 도시의 풍경은 언제나 사진작가들을 사로잡았다. 높이 치솟은 건물, 새로운 풍물들, 거리의 활기와 빠른 속도는 사진의 오래된 테마다. 시각 중심적인 현대 자본주의 문명은 마르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했고, 카메라는 이런 동시대성을 포착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기술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 으젠느 앗제가 거리에 나섰을 때, 그의 눈을 끈 것은 수레를 끄는 사람과 뒷골목의 가난한 살림살이뿐이 아니었다. 상점의 쇼윈도, 화려하고 새침한 자태로 주인을 기다리는 모자와 옷들도 그의 카메라에 인상적으로 담겼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잡힐 듯 잡을 수 없는 상품들은 행인의 동경을 자아냈고, 시각적 매혹과 소비를 연결 짓는 새로운 습관을 가르쳤다. 이 '공중 전시장'은 도시인의 가까운 미래, 현재는 아니지만 노동력을 성실히 바친다면 가질 수 있는 미래상으로 거리를 점령했으며, 그곳에 감도는 긴장감은 곧 시대의 욕망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사진작가들에게 으젠느 앗제의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자본주의가 고도화, 추상화된 21세기 한국의 쇼윈도는 어떤 욕망의 관습을 전시하고 있을까.

여기, 9명 사진작가의 쇼윈도 사진이 실마리를 준다. 일민미술관의 6번째 시각문화작업 'SEE, SHOW &THE WINDOWS'는 한국사회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쇼윈도에 주목한 프로젝트. 하나의 키워드에서 출발한 사진작가들은 각자의 해석에 따라 같고도 다른 쇼윈도들을 채집해 왔다.

이동엽, '서울시 종로구'
"찍으려고 보니 쇼윈도 아닌 것이 없었다"는 이동엽 작가의 말처럼, 팔리려는 목적으로 유혹하는 이미지의 전장이 된 거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철마다 다른 콘셉트로 갈아입는 럭셔리 브랜드의 쇼윈도는 물론, 공산품들이 가지런히 놓인 대형마트의 진열대와 밤마다 현란한 빛을 내는 백화점 외관, 방문객에게 의도된 첫 인상을 전달하는 관공서의 로비도 현대의 대표적 쇼윈도로 선택됐다.

이들의 상당수는 지루할 만큼 비슷하다. 작가 이름과 장소를 가리면 서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일상에 파고들어 있는 자본주의적 유혹의 기술, '당신'만을 위한다는 약속과 그로 인해 부추겨진 우리의 욕망이란 이렇게, 지루할 만큼 획일적이다.

길어야 겨우 한 철 전시되었다 사라졌을 쇼윈도들을 보는 일은 쓸쓸하기도 하다. 유행에 따라 물건을 사야만 하는 현대의 절박한 욕망은 얼마나 덧없는 것일까.

하지만 여기까지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쇼윈도를 마주칠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단상이다. 'SEE, SHOW & THE WINDOWS'의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들이 예상된 결론을 자신의 방식으로 돌파하는 순간이다.

안성식, '서울시 중구 명동 13개 발견'
이동엽 작가는 시야를 가리는 강압적 이미지들 중 유난히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들만 찍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숨어 있는 쇼윈도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반쯤 내려진 셔터 너머로 보이는 광고 사진이나 동물원 우리에 갇힌 호랑이의 뒷모습 같은 것.

원각사지 10층 석탑 사진은 여운이 길다. 작가가 자신을 봐달라는 이미지들의 아우성에 지쳐 잠시 들른 탑골공원에서 찍었다. "제가 석탑을 보는 게 아니라 석탑이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생각해보니, 한참 어린 제가 본다고 나서는 게 석탑 입장에서는 우스울 수도 있겠더라고요." 사람들은 유리벽을 둘러 석탑을 볼거리로 만들었지만, 석탑이 지나온 시간은 스치는 시선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진우 작가는 상품을 소개하는 기능을 넘어 상품 이미지에 대한 문화적 소비 공간으로 작동하는 쇼윈도에 주목했다. "쇼윈도는 행인에게 감각적 만족을 줌으로써 상품 소비를 촉진시킵니다. 하지만 유리로 막혀 있기 때문에 시각 이외의 감각은 차단하는 한계가 있죠. 이 한계를 극복하는 전략이 바로 환상입니다."

이런 해석의 맥락에서 낙원상가와 동물원을 찾아갔다. 번쩍번쩍 광을 내고 있는 드럼, 날렵한 맵시를 뽐내고 있는 기타가 진열된 낙원상가의 쇼윈도에서는 청각의 시각적 변환을, 동물원 우리에서는 동물들의 삶의 환경을 시각적으로 구성한 풍경을 보았다. "관람객들은 동물들에게 적합한 온도와 습도를 직접 느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기후를 나타내는 시각적 기호들을 통해 상상하게 되죠."

이민호 작가는 쇼윈도의 기원을 찾아 재래시장으로 갔다. 소박하고 정직하게 진열된 곡물과 채소, 과일과 생선은 물건 자체의 쓸모가 오갔던 '고전적인' 거래까지 가리킨다. 이미지와 유행이 기능을 잠식해 버린 오늘날 소비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이진우,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SEE, SHOW & THE WINDOWS' 프로젝트에 팽팽한, 드러나고자 하는 이미지와 보고자 하는 욕망 간 밀고 당기기는 우리의 시각을 둘러싸고 매순간 벌어지는 전투다. 익숙한 쇼윈도들에 우리 자신이 낯설게 비친다. 저 강압적이고 덧없는 이미지들 틈에서 우리는 어느새 눈 뜬 장님이 된 것은 아닐까.

'SEE, SHOW & THE WINDOWS'의 대표작들은 8월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일민미술관에 전시된다. 02-2020-2060


임지원, '서울시 강남구 갤러리아백화점'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