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oman's Life'
작가 서유라에게 책은 텍스트로서의 역할만 하지 않는다. 그의 책들은 말하고 장식하고 싸운다. 꽃처럼 배열된 책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심볼이고, 분홍색과 주황색 등 붉은 계열의 책들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책의 색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책의 등을 보자. '한국의 풍속화', 'The erotica of Korea', '여성, 미술, 사회' 등의 책이 함께 엉켜있는 장면은 페미니즘과 성적 화두를 한꺼번에 끌어온다.

책은 멈춰 있다. 하나의 책은 다수의 독자에게 무수한 감상을 남기지만, 그럼에도 책은 하나의 텍스트로 굳어져있다. 작가 서유라의 작업 안에서 책은 텍스트로서의 역할에 멈춰 있지 않고, 조형 작업의 재료가 되거나 색채 배열의 한 부분이 된다.

이로서 책은 '그의 의미'에서 한 발짝 물러나, 우리 마음속 '정형적 무엇'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책, 색, 형태. 조용한 책을 모아 소란하게 하고 위태롭게 배열한 것은 관람객의 생각 바깥의 영역을 건드릴 뿐 아니라 상당히 평화적으로 작가의 생각을 전달한다.

종이의 질감과 늘어선 모습을 보면 사진전 같지만 회화다. 이번 'Soul Trip' 전에서 소개되는 20여 점의 작품들은 작가가 평소 관심을 둔 페미니즘, 여성, 문화, 쇼핑, 한국 등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여왕의 시대'와 함께 포개어져 있는 '다이어트의 여왕', 짐짓 묘하다. 6월 16일부터 7월 3일까지. 가나 컨템포러리. 02)720-102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