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 목판화 30년 초대전] 민중미술, 서정성 담은 작품, '온몸' 신작들 총 113점 선보여

신작 '새는 온몸으로 난다'(2011)를 설명하는 이철수 작가./배우한기자
조각칼로 시대를 새기고 시를 쓰면서 인간의 삶과 사회의 유기적 관계를 통찰해온 판화가 이철수씨가 30년 만에 자신의 존재를 대중에 처음 알린 자리에 다시 섰다. 서울 관훈동 관훈갤러리에서 6월 22일부터 열리고 있는 <이철수 목판화 30년 기획 초대전-새는 온몸으로 난다>전이다.

이 작가는 30년 전인 1981년 4월, 같은 장소에서 첫 개인전 '이철수 판화전'을 열었다. 당시 작품들은 80년대 폭압적 시대를 증언하고 맞서는 민중미술로 커다란 반향과 함께 사회와 미술계에 '이철수'라는 이름을 깊게 각인시켰다.

이후 연어가 고향으로 회귀하듯 30년이 돼 열린 전시는 그의 변화된 판화 과정과 예술세계,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6년 만의 전시는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이야기한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대표작들과 90년대 이후 서정성을 담은 내용의 작품, 그리고 2005년 이후 삶의 터전에서 건져 올린 신작들로 꾸며졌다. 출품작은 모두 113점으로 1981~2005년 사이에 제작한 작품이 58점, 2005년 전시회 이후 새로 만든 신작이 55점이다.

30년 화업을 기념하는 전시작들의 선정 기준과 관련, 작가는 2005년 이전 작들은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작품, 작가의 마음이 가는 작품,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활용도와 효용성이 컸던 작품들을 선정했다고 한다. 신작들은 자기 성찰의 연장에서 '온몸'으로 상징되는 온전한 가치, 존재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북 치는 앉은뱅이', 1981
전시장의 1980년대는 대작 '장승솔'을 시작으로 '공장지대', '북 치는 앉은뱅이', '동학연작', '거리에서', '새벽이 온다. 북을 쳐라!' 등이 시대의 암울과 민초들의 맞섬을 실감나게 전한다.

눈에 띄는 것은 초기 장판•콜타르, 고무 판화에서 목판화로의 변화다. 작가는 첫 개인전을 계기로 만난 민중판화가 오윤(1946~86)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목판화를 하게 된 것도, 시대참여적인 미술을 하는 데 오윤 형이 있었기에 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진 1990년대에서 2005년에 이르는 작품들은 이전 작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1980년 대 말부터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에 기반한 선(禪)판화들이다.

'바람', '소리' 연작이나 생활 주변의 자연, 농사 일 등을 묘사한 여백이 있는 작품들은 좌선(坐禪)을 통해 구도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관람객 스스로를 그에 몰입하게 한다.

이는 이철수 판화의 특징으로 그의 예술적 정신적 스승인 오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한 측면과 함께 스스로 밝히듯 그 자신의 '일상의 고백이자 반성문'이란 성격이 두드러진다.

'불타는 무' 2011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행위가 반성이면 '선(禪)'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반성'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작가는 믿는다.

신작들은 그러한 선적인 반성의 바탕에서 기운을 받은 듯 힘 있고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우선 비상하는 독수리가 압도하듯 다가오고, 문자도 판화, 밭일하는 농부의 모습도 신선하고 이채롭다.

이번 전시의 화두는 '온 몸'이다. 그래서 독수리 그림에 붙인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를 표제작으로 삼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지 않고 온몸으로 날지요. 말하자면 온몸으로 육박하는 존재의 실체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퍼드덕거리는 날개만 보지 말고 쭉 밀고 나가는 몸통을 보자는 얘기죠."

그러면서 "우리 사회엔 늘 좌우로 나누려는 나쁜 경향이 있는데, 저에 대해서도 정체가 뭐냐, 좌냐 우냐 묻는데 그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하늘 이고 저물도록'. 2011
작가는 '온몸'에 대해 완벽이 아닌 '온전'의 개념이라고 한다. 사회와 개인에 이르기까지 온전한 가치를 지닌 생명으로서의 존재가 고귀하다는 것이다.

문자도 판화는 한자로 쓰인 무(無)나 공(空)이 불타 사라져 가는 그림이다. '불타는 무'의 화제(畵題)는 이렇다. "없을 무가 불탄다. 빌 공도 능히 그럴 터! 불타오르는 것은, 식어 재가 되려는 뜻이지!"

무와 공마저 태워 없애는 것이 진정한 비움이고 채움으로 작가는 우리에게 그렇게 채워보고 비워보라고 권한다.

밭고랑을 지문 형태로 표현한 '하늘이 이고 저물도록', '백장 이후' 등의 작품은 그림에 곁들여진 화제와 함께 노동의 숭고함을 묵직한 울림으로 전한다.

그러고 보면 이철수 작가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온전'한 것을 지향해 온 것으로 보인다. 초기 민중미술에서 선판화, 최근의 '온몸'의 신작들까지. 다시 말해 개인의 삶과 이들이 얽혀 살아가는 사회, 더 나아가 세상까지 차별 없이, 각각의 존재성을 자유롭고 충분하게 드러낼 수 있게 모두가 '온전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상의 고백과 반성이라는 자기 성찰을 통해 견고해지고, 더욱 현실화된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이철수가 지금껏 그림을 그려온 것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돌아보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이철수의 판화는 그렇게 우리의 삶을 비춰 보여준다. 전시는 7월 12일까지. 02)722-4877.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