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아날로그적 작품서 실험적 작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Toti Toronell의 'Naif'
화려한 조명이나 시끄러운 대사들이 공연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현상은 신선한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장르 고유의 매력을 원하는 관객들에겐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정신없는 무대보다 조용한 몸짓만을 추구하는 마임이나 무용, 댄스씨어터 등은 오히려 새로운 매력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신체의 움직임과 신체를 통한 표현에 중점을 둔 모든 장르를 포용하는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은 올해 6회째를 맞아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신체극들을 보여준다. 올해에는 신체극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장르에서 더 진일보한 작품들을 초청하면서 잊고 있었던 신체의 매력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기괴하고 귀여운 해외 신체극

그동안 국내 마임 작품이나 댄스씨어터를 접해본 관객들에게 이번 행사는 두 편의 실험적인 해외 신체극을 소개한다. 이번 행사의 개막작인 DoTheatre의 'Upside Down'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괴기스럽고 코믹한 판토마임과 댄스씨어터로 보여준다. 마치 파우스트 박사가 있을 듯한 실험실에서 세 명의 유령들이 주도하는 해부학 실험은 섬뜩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번 공연을 보여주는 DoTheatre는 현재는 독일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러시아에서 나온 영향력 있는 단체의 하나다. 행사 관계자는 "극한의 신체극 단계를 개척한 DoTheatre는 혹독하고 큰 노력이 들며 시적인 긴장감이 있는 러시아 모더니즘식의 무용언어를 만든 단체"라고 설명했다.

DoTheatre의 'UpSide Down'
반면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또 다른 해외 작품인 Toti Toronell의 'Naïf'는 코믹한 광대와 만화 이미지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신체극이다. 광대와 뮤지션 앞에 쓰레기차가 각종 쓰레기들을 버리고 가면 광대는 여러 가지 생활 도구들을 이용해 위트 넘치는 광대 쇼를 선보인다.

스크린에 등장한 광대의 또 다른 자아는 광대와 대화를 나누며 폭소를 이끌어낸다. 작품은 마임과 마술 등 광대극의 몇 가지 요소에 집중하며 시종일관 유쾌한 몸짓을 새롭게 조명한다.

관객들이 참여해야 완성되는 국내 실험작

올해 소개되는 국내 신체극 중에서는 더 다양하고 기발한 오브제와 콘셉트로 시선을 끄는 작품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주얼 씨어터 컴퍼니 꽃의 '종이 오브제 퍼포먼스'인 '종이인간'이다. 비주얼 씨어터는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이 결합된 형태로, 이미 쓰여진 텍스트에서 창작하는 연극이 아니라 재료의 실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재료극'이다.

'종이인간'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정해지지 않은 관객 20여 명이 아예 출연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관객의 도움이 없이는 진행될 수 없는 형식이라는 점이 오히려 흥미를 일으킨다.

비주얼 씨어터 컴퍼니 꽃의 '종이인간'
마사지사의 대화로 시작하는 공연은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조각인형들로 공연장이 어느새 전시장이 된다. 이 형식이 특별한 것은 공연자들이 혼자 설치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조각의 원형이 관객들이라는 점이다.

관객의 몸 일부 혹은 전체에 종이나 호일을 덮고 마사지해 떠낸 종이인형들은 공연 도중 살아나 움직이며, 인형은 자기의 원형인 관객을 이끌어내 함께 행위를 하고, 소멸을 맞이한다.

한편 역시 관객의 자발적인 참여와 움직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춤, 사진, 음악, 미술,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예술인들이 즉흥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이 실험은 의도되지 않은 장소와 상황에서 마음이 이끄는 곳에 발자취를 남기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콘셉트는 초 단위로 과거가 되는 '지금 이 순간'을 관객과 함께 춤, 사진, 음악 등으로 즉흥적으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형식이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모인 만큼 매체 역시 다양하다. 관객들은 카메라와 빔 프로젝터를 통해 촬영되는 사진들을 보고, 녹음된 자신들의 목소리들이 믹싱 작업을 거쳐 공연 후반에 사용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공연예술 위기의 시대, 몸으로 돌파한다

실제상황즉흥프로젝트의 '원더스페이스 네모에서 생긴 일'
올해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은 다원예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매체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날로그적인 작품부터 실험적인 작품까지 신체극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려는 의지도 선정된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또 하나는 관객을 염두에 둔 공연들의 창작과 선정이다. 이번 페스티벌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모두 관객 참여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인상적인 대목이다.

부대행사로 마련된 '다원예술 연속 포럼'의 주제도 지금의 다원예술이 관객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이는 관객들에게 신체극의 매력을 체험케 하여 그 저변을 확장하려는 취지로 읽힌다.

페스티벌 관계자는 "올해는 관객 비평모임도 만들어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이 관객과 더욱 소통할 수 있는 축제가 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