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같은 평화'전] 은유적 작품들 통해 삶과 예술의 자리에서 의미 재해석
가난하고 우스꽝스럽고 키치한 구조물이지만 실은 그것이야말로 삶의 풍경이다. 우리의 일상이 저런 물건들에 기대 지속되어 왔음은 오래된 동네와 시장만 가 봐도 알 수 있다.
낡은 것들은 제 안에 쌓인 사연을 전해 주었고, 부서진 것들은 상상력과 손재주를 입고 다시 태어나곤 했다. 사람들은 과거를 저버리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웠고, 시간의 흐름 앞에서 겸손해야만 했다.
촤르르르…. 그 내력이 권용주 작가의 작품 '폭포'를 이토록 단단히 만들었나보다. 되풀이되는 물벼락에도 끄떡없다. 하지만 여전히 조마조마하다. 물줄기가 워낙 거센 탓이다.
누가 저런 시련을 주는 걸까. '폭포'가 설치된 전시 <강 같은 평화>의 주제가 '4대강 사업'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감이 잡힌다. 더구나 저 물은 빠져나갈 곳도 없이 돌고 돌고 도는 바람에 조금씩 탁해지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안소현 큐레이터는 "현안과 관련된 미술 전시는 고발성을 띄기가 쉽다. 하지만 직접적인 메시지 이외에 이런 냉소와 조롱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4대강 사업은 이미 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미술로 제도적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 사업을 받아들이거나 잊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정하고 비틀어 보자"는 기획자의 제안으로 모인 작품들은 국회나 TV 토론 프로그램이 아닌 삶과 예술의 자리에서 4대강 사업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권오준 작가는 트로피 모양의 큰 유리병에 포도주를 가득 채워 놓았다. 언뜻 근사하지만, 갇힌 포도주는 점점 썩어가고 있다.
이 '달콤한 상'은 물길을 막는 4대강 사업의 지당한 결과인 동시에 경쟁과 개발, 승리를 부르짖는 한국사회에 대한 착잡한 은유다.
김상돈 작가의 '"축" 전시'는 개업식을 위해 길러지고 개업식 후 버려지는 식물들과 4대강 사업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단양 쑥부쟁이를 연결해 본다. 화분에 심긴 식물들은 가장 화려한 자태로 개업식을 빛내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사육'된다. 반면 단양 쑥부쟁이는 서식지를 잃은 후 다른 곳에 강제 이식되었다.
이수성 작가의 'Table Work no.1~44'는 환경부 행정민원서류 양식들의 내용을 지우고 다양한 색을 덧입힌 작품. 추상화 같은 양식들이 행정기관을 둘러싼 불통의 상황을 상징하는 것 같다. 소통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리산 작가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4대강의 모습에서 대지미술의 단서를 발견한다. 인공적인 형태로 파헤쳐진 강변에서 "미스터리 써클", "샌드엠보싱 기법을 통한 역동적인 마티에르"를 보는 작가의 유머 감각이 쓴 뒷맛을 남긴다.
<강 같은 평화>라는 제목의 아이러니는 4대강 사업의 자가당착과 맞닿아 있다. 노순택 작가는 '양보 없는 착각'에서 녹색성장의 명분과 현실을 대비시킨다. 녹색성장의 핵심은 인간사회와 환경의 공존이라던데, 공사 현장은 처참하다.
"녹색성장은 나와 내 가족은 물론, 아마존의 곰과 북극곰까지 배려하는 성숙함을 전제로 한다"는 대통령의 말은 강변의 물고기 사체 앞에서 어쩐지 아득하다.
<강 같은 평화> 전은 7월24일까지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한 space99, 신문로2가에 위치한 EMU에서 진행된다. 02-735-5811.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