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가야금 콘서트 - 달 항아리1975년 초연, 여전히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곡임을 입증

탄생한 지 40년에 가깝지만 '미궁'은 여전히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곡이었다. 이 곡이 초연된 1975년 명동극장에서는 여성관객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는 해프닝이 벌어졌고, 2000년대 초반에는 이 곡에 관한 괴담들이 인터넷을 달궜다.

바닥이 아닌 두 개의 스툴 위에 올려진 가야금. 그것을 연주하는 모습도 전통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이 아닌 바닥의 몸체를 스틱으로 긁어 소리를 내거나 줄을 손으로 뜯는 대신 첼로 활로 내리치거나 켰다. 음을 높여가면서 가야금의 한쪽 끝을 들어 올리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 곡은 우주의 흩어진 혼을 불러들이는 '초혼'을 시작으로 '웃음과 울음'이 뒤섞이고 고통의 신음과 자조적 웅얼거림 끝에 백색 소음과 함께 피안의 세계로 마무리된다. 큰 흐름을 제외하고 황병기가 즉흥적으로 연주한 가야금과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호흡한 소프라노 윤인숙의 소리도 인상적이었다.

지난 7월 13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황병기의 가야금 콘서트 '달 항아리'는 '미궁'으로 절정에 올랐다. 황병기의 창작 활동 50년을 기념한 무대로, 그가 창작한 작품 중 6곡을 여러 연주자들이 번갈아 연주했다.

조선 후기 화가 안중식의 작품 '성재수간도'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밤의 소리'로 공연은 시작됐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악기인 거문고의 힘 있는 음색과 장구의 가락이 멋스럽게 어우러지는 '소엽산방',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추천사', 실크로드의 고대도시가 신비롭게 펼쳐질 듯한 '하마단' 등이 이어졌다. 곡 사이 황병기의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공연의 마지막 곡은 그의 대표곡으로 불리는 '침향무'로 '미궁'에 이어 직접 가야금을 잡았다. 197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초연된 이 곡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가야금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한다.

나뭇진에서 얻은 향료인 침향이 춤을 추듯 피어오르는 모습을 담아낸 곡은 마치 대숲에서 무예의 고수들이 대결을 펼치는 듯 긴박감이 넘친다.

이번 공연에는 연주 외에도, 무대를 세 개로 나누고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음악과 어울리는 영상을 보여주며 곡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공연의 주인공인 가야금 명인 황병기와 함께 지애리, 기숙희, 안나래(이상 가야금), 정대석(거문고), 강권순(노래), 김웅식(장구) 등도 무대에 번갈아 올라 50주년 기념 무대를 빛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