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조각전 [LIFE STORY]쉽고 재치있는 작품들, 현대인에 따뜻함과 치유의 메시지 전달

'집으로', steel, acrylic on F. R. P, 2011
일상의 자신 모습이기도 하고, 자주 마주하는 일반의 생활을 닮은 조각은 우선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약간 비튼, 따스함이 배어있는 작품은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는 내용들을 해학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표현해온 김경민 조각의 특징이다.

그런 김 작가가 모처럼 신작을 들고 서울 소격동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에서 7월 6일부터 개인전 'LIFE STORY'를 열고 있다. 주변의 소소한 풍경과 인물을 다룬 것은 여전한데 이전 작들에 비해 더 현실적이고, 따뜻하고 세밀해졌다.

가족이라는 큰 틀을 주제로 삼았으면서도 이전의 어깨가 무거운 엄마 (돼지엄마)나 철딱서니 여동생 (쉿!)처럼 집단 내 개개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전체의 균형을 보다 강조한 게 두드러진다.

사이 좋게 목욕을 하는 모습의 '친한 사이'나 가족과 강아지가 함께 나선 '유쾌한 산책', 부부가 함께 좁은 평균대에 올라 선 '균형' 등은 부부와 가족 구성원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또한 이번 전시작들은 조각가인 남편(권치규)과 세 자녀와의 일상을 주요 모티프로 했는데 작가의 속내도 자연스럽게 엿보인다. 금연을 약속한 남편이 아내 몰래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똑 똑'이라는 작품은 금연을 바라는 작가의 바람을 담았고, 선물 보따리를 챙겨 든 남성을 묘사한 '기념일'은 선물을 받고픈 작가의 속마음이기도 하다.

'유쾌한 산책', acrylic on F. R. P, 2011
그밖에 '유토피아', '첫출근' 등 전시작 대부분은 쉽고, 재치있으며, 거창한 미학적 내용을 표방하는 대신 인간의 기본 윤리를 담은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에대해 작가는 "미술이 꼭 어둡고 무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상처와 고통으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작품을 통해 따뜻함과 치유를 전달해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김 작가의 예술세계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시대에 대한 통찰, 리얼리즘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작품 속 여윈 팔과 다리를 한 사람들은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속박당해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고, 비틀리고 구부러진 현대인의 자화상을 상기시킨다.

이는 김 작가가 '풍자적 리얼리즘에 관한 조형성 연구'라는 석사논문(1997년)을 쓰고, 해학과 풍자를 담은 인간상을 다룬 초기 작품들과 맞닿아 있다. 즉 그의 비판으로서의 조각은 일상을 겨냥하는 한편, 일상에 대한 비판을 통해 현실을 포착하려고 한다.

가령 지난 4월 가족과 함께 일산에서 열린 서울모터쇼를 찾았을 당시를 묘사했다는 '2011 서울 모터쇼' 속 여성은 화려한 외제차에, 남성은 늘씬한 레이싱 모델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게 꽤 풍자적이다.

그러나 모터쇼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담은 '집으로'라는 작품은 모터쇼의 화려한 외제차들을 뒤로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가족은 낡은 자전거에 몸을 싣고 페달을 밟고 있지만 표정은 매우 행복해 보인다.

'2011 서울 모터쇼', acrylic on F. R.P 2011
이렇듯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웃음, 아이러니, 사캐즘(sarcasm, 비꼬기)을 대응시키는 김 작가의 방식에 대해 김복영 평론가는 "팝 리얼리즘"이라고 규정한다. 소비사회와 팝문화를 배경에 둔 시대의 삶을 조망하는 한 방법으로 리얼리즘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작가의 가녀린 팔과 다리를 한 인물들은 문득 인간의 군살을 제거한 자코메티의 조각을 연상시킨다. 그가 고뇌한 인간 실존의 문제는 김 작가가 바라보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그럼에도 김 작가 고유의 해학성과 섬세한 모델링, 드라마틱한 연출 등은 관람객의 이목을 끌고 즐겁게 한다. 해학적인 미소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7월 31일까지. 02)720-5789


'똑! 똑!', acrylic on F. R. P, 2011
'기념일', acrylic on F. R. P, 2011
'친한 사이', acrylic on F. R. P, 2011
'유토피아', acylic on F. R. P, 201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