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JP 썸머 페스티벌-스물 하나의 방'79번째 생일 맞아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현대적 변주 시도

이화진·박미옥, '이미지, 인스트러먼트'
"예술가가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연주하는 상황. 관객이 연주함으로써 예술가가 공격받는 상황. 관객의 자유로운 출입."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의 일부다. 1961년에 작성된 이 스코어(연주를 위한 악보)는 아티스트 백남준의 급진성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관객을 참여시키고 쌍방향 소통을 도모하려는 현대미술의 고민이 무려 50년 전에 예언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지난 7월20일 백남준의 79번째 생일을 맞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시작된 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을 모티프로 했다. 소리를 보여주고, 관객 스스로 연주하게 하는 20개의 전시와 공연이 20개의 방 형태 전시장에서 펼쳐진다.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의 현대적 변주인 셈이다.

사운드 아티스트 버블리피쉬의 '무리'는 관객의 참여가 전자음과 시각적 기호들로 변환되는 작품이다. 여러 명의 관객이 전시장에 설치된 아이팟을 통해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입니까?", "오늘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누구를 보았습니까?" 등의 질문들에 대답하면 그 결과가 스크린에 다양한 색과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웅성거림은 곧 합주가 된다.

이화진, 박미옥 작가의 '이미지, 인스트러먼트'와 고창선 작가의 '불협화음을 위한 5인의 앙상블'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관객들의 합주를 이끌어낸다. '이미지, 인스트러먼트'의 경우 첼로와 북, 캐스터네츠 등을 연주하는 것처럼 다루면 각각의 악기와 연결된 스크린 속 인물들이 각기 다른 동작을 선보인다.

고창선, '불협화음을 위한 5인의 앙상블'
고창선 작가는 각자 소리를 내는 기타와 건반, 조이스틱과 센서 드럼을 설치해 관객의 참여에 따라 무궁무진한 조합이 만들어지도록 했다. 대체로 소음처럼 들리지만 우연히 멋진 화음이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위한 5인의 앙상블'은 현대사회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관객을 관객 자신과 만나도록 주선하는 작품도 있다. 400개의 스피커에서 빗소리, 바람 소리, 거리 소리 등 일상의 소리가 수런수런 들려오는 김승영 작가의 '소리벽'에서 관객들은 명상하듯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리치 오와키 작가의 '스킨 슬라이드'는 역사적 기억을 현재에 살려낸다. 바닥에 있는 화면에서 무용수의 움직임과 소리가 상영되는데, 그 이미지는 전쟁 통에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하고 안쓰러운데 손을 대 보면 진동까지 전해져 온다. 작가는 이 작품들을 경험하는 것을 일종의 '제의'라고 설명한다.

전세계의 고물들을 모아 익살스러운 구조물로 조립한 우지노 무네테루 작가의 '로테이터스'는 백남준의 초국가성과 문명 비판적 성향, 발명가적 유머 감각을 계승한 작품이다.

일본 거품 경제 시기와 그 이후를 경험한 작가는 호황의 이면인 과도한 소비와 경솔한 낙관주의에 주목하게 됐다. 버려진 물건, 중고품으로 작업을 하는 것은 이에 대한 풍자다. 그는 심지어 낡은 턴테이블과 믹서기, 기타와 드라이어 등으로 만든 이 설치작품 겸 악기로 멋진 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

김승영, '소리벽'
양아치 작가는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서의 백남준의 업적을 연장한다. 백남준은 다양한 매체의 기술적 특성과 관습을 뒤집고 뒤섞음으로써 매체에 대한 철학적 재해석을 시도했는데, 양아치 작가 역시 '영화'를 단서 삼아 매체로 매개되는 현대사회의 현실에 대해 질문한다.

관객들이 작가가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와 소실점 안경에 기대 전시장을 둘러보는 체험 자체가 바로 영화적 퍼포먼스 '영화, 라운드, 스무우스, 진실로 애리스토크래틱'이다. 실재와 가상 현실을 넘나드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그 둘이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 묻는다.

시대를 앞서 간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이어받는 은 관객들에게 한바탕 놀다 가라고 손짓한다. 역시, 백남준의 팔순잔치답다. 전시와 공연은 9월13일까지 이어지며, 20개의 방을 지나 21번째 방을 찾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www.njpartcenter.kr, 031-201-8571~2.


리치 오와키, '스킨슬라이드'
우지노 무네테루, '로테이터스'
양아치, 영화, 라운드, 스무우스, 진실로 애리스토크래틱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