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바렌보임 27년 만에 내한 공연, 임직각 평화콘서트도

다니엘 바렌보임, 사진=SheilaRock
"나에게 음악은 병도 아니고 일도 아니죠. (중략) 어쩌다 한가한 저녁 시간을 갖게 되면 나도 모르게 차라리 피아노 독주회를 하거나 아니면 베를린 국립 관현악단이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볼프강 슈라이버의 <지휘의 거장들> 中)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서 정력적인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말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칠순을 맞았음에도 그는 여전히 피아노 의자에 앉아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다음 날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를 암보한 채 포디엄에 서는 열정을 보여준다.

마에스트로 다니엘 바렌보임이 무려 27년 만에 내한공연을 가진다. 음악가로서 그를 설명하는 두 개의 키워드-베토벤과 평화주의-는 이번 공연에서 명확히 모습을 드러낸다.

8월 10일부터 14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에 이어 15일에는 임진각에서 평화콘서트를 펼친다. 평화의 오케스트라이자 기적의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웨스트이스턴 디반과 함께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인도주의적인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관현악단이다. 두터운 우정을 쌓았던 팔레스타인계 유대인 석학 故 에드워드 사이드 박사(전 컬럼비아 대학 교수)와 함께 진행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소프라노 조수미
오케스트라의 이름은 대문호 괴테가 동서양의 소통을 지향하며 집필한 '서동시집'의 명칭을 차용했다. 단원들 역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이란, 요르단, 레바논 등 중동국가 출신의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되어있다.

스페인 세비야로 거점을 옮겨 매년 여름 이곳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후론 스페인 출신 연주자도 가세했다. 세비야가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은 중세 시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이슬람교인이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던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1999년 창단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와 다니엘 바렌보임이 그간 남긴 자취는 평화의 메시지가 필요한 곳곳에 남아 있다. 2005년에는 중동의 첨예한 대립지역인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공연했고, 이듬해 여름에는 무슬림 왕조가 세운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음악을 통한 평화의 외침은 웨스트이스턴 디반을 창단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 1989년 가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3일 후 열린 베를린필하모닉의 특별 음악회를 위해 한걸음에 달려갔던 이도 바렌보임이었다.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에 여전히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스라엘을 위한 그의 처방은 예루살렘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연주하는 것이었다.(2001년) 객석에는 박수와 욕설이 뒤섞였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사진=LuisCastilla
잘 알려진 대로 그는 1967년 2차 중동 전쟁 당시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조국으로 달려가 연주를 했던 애국자다. 하지만 핍박을 받던 이스라엘이 역으로 핍박하는 입장에 서 있는 모순적 태도를 그는 거침없이 비판한다.

행동하는 지성인 그는 동시에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교향곡뿐 아니라 독주곡, 실내악, 협주곡 등을 고루 섭렵해왔다.

피아노 협주곡 레코딩만 세 차례를 진행했고, 1985년에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솔리스트로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녹음을 진행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두 달 만에 완성했다.

한국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후에는 유럽 루체른 페스티벌과 베를린, 잘츠부르크 등에서 교향곡 9번과 3번 등을 연주한 뒤, 쾰른에서는 5일에 걸쳐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다.

8월 10일에는 교향곡 1, 8, 5번을, 11일에는 교향곡 4, 3번, 12일에는 교향곡 6, 7번, 14일에는 교향곡 2, 9번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분단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인 임진각에서는 스페셜 콘서트가 열린다. 광복절이기도 한 8월 15일, 다니엘 바렌보임은 임진각 평화누리 '음악의 언덕'에서 환희로 가득 찬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한다. 14일과 15일에는 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동행한다.

한국에서 울려 퍼지는 다니엘 바렌보임과 화합을 위해 창단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는 세계적으로도 역사적인 연주로 기록될 듯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