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바렌보임] 감정의 롤러코스터 '장송행진곡', 4번 교향곡 아쉬움 달래

2011년 하반기 클래식 공연 이슈 중 하나는 마에스트로 다니엘 바렌보임이었다. '평화주의자'이자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불려온 그가 예술의전당에서 4차례에 걸쳐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다는 사실은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가 이번 공연을 위해 이끌고 온 오케스트라는 故 에드워드 사이드 박사와 함께 창단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로, 대립이 첨예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국가 출신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연주단체다.

지난 8월 10일, 베토벤 교향곡 1번, 8번, 5번(운명) 연주를 시작으로, 8월 14일, 2번과 9번(합창)으로 베토벤 대장정은 마무리됐다. 이어 15일 광복절에는 27년 만에 바렌보임이 내한한 이유였던 임진각에서의 '합창'이 다시금 연주됐다.

가 거장의 연주를 마주한 8월 11일에는 베토벤 교향곡 4번과 3번(영웅)이 연주됐다. 전원이나 영웅, 운명 등의 표제를 단,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보다 덜 알려진 4번 교향곡은 그러나 베토벤 교향곡 중 가장 완전한 형식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슈만에 의해 '가냘픈 그리스 소녀'라는 애칭을 얻기도 한 이 곡은 전체적으로 평온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오른손에 움켜쥔 지휘봉의 움직임도 간결했다. 종종 지휘봉 끝을 바닥으로 향한 채 가로젓는 백발 거장의 모습에선 주술을 거는 마법사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전체적으로 명징하기보다는 따스한 음색을 들려주었다. 이 단체가 전하는 평화적인 메시지를 걷어낸 채 기량적 측면에서만 평가한다면 무난하고 안정감 있는 연주단체 정도로 볼 수 있다. 교향곡 4번에서 들려준 다소 무색무취한 연주는 다니엘 바렌보임이라는 대가에 대한 기대만큼의 실망감으로 이어질 뻔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교향곡 3번 '영웅'이 조금은 달래주었다. 베토벤 교향곡의 전환점이 되었던 이 곡은 잘 알려져 있듯, 나폴레옹에 헌정되었던 작품이다. 활기차고 대담한 1악장과 극적인 연주가 돋보이는 2악장, 호른의 연주가 인상적인 3악장, 당당하게 정점으로 치닫는 4악장으로 이루어지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다니엘 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특히 2악장에서 빛을 발했다. '장송행진곡'으로 알려진 2악장은 전사한 영국의 장군을 위해 쓰여진 곡이라고 한다.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듯 소리를 줄인 흐느낌부터 웅혼한 기상을 기리는 듯 활기 넘치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악장 내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사위듯 포르테와 피아니시모를 오가는 연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 백발의 거장에게 기대했던 음악을 통한 환희는 느낄 수 없어 이날 공연은 여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