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cene of traces'
장면은 종종 누군가의 역사가 되었다가 세월의 흐름을 품고, 다시 누군가의 기억 저장고가 된다. 훼손되고 벗겨진 벽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그 벽이 견디고 지켜온 시간을 알아주는 것.

일상에서 언제나 마주할 수 있는 벽에서 그만큼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일은 여간 따뜻한 시선으로 불가능할 터다. 작가 전리해는 낡은 벽과 한지 작업에 집중하여 '흔적'을 읽어낸다.

물감과 한지가 만나 이루는 화폭과 북성로의 골목, 도시의 뒷길 등에 번연히 선 벽들은 'A Scene of Traces' 전으로 교감한다.

작가가 솎아낸 장면들은 기억과 물리적 공간의 교차점 역할을 한다. 단순히 외풍을 막기 위한 벽으로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기대고, 기억하고, 추억을 심어둔 자리로서의 벽을 짚어내고, 붓이 스친 장지 위에 흐르는 흔적을 통해 이러한 기억을 지각한다.

이에 대해 현대미술연구소 김옥렬 대표는 "장소와 장소의 경계를 허물면서 오래된 흔적이 스린 장소와 물감으로 그린 회화적 공간이 사진을 통해 접속하면서 탄생하는 제3의 장소, 즉 회화의 결과 기억의 속살을 발견하는 시선"이 전시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하나의 벽에서 무수한 인생과 흔적이 흘러나오고, 이들은 서로 엉켜 또 다른 기억을 만든다. 작가는 "잊힌 심적 표상물을 통해 내부에 숨겨져 있는 감성을 드러내는 일련의 과정"으로서 2006년부터 특정 장소에 대한 공간 표현 작업을 이어왔다.

전시는 8월 20일부터 9월 3일까지 갤러리 온에서 볼 수 있다. 02)733-8295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