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어울림의 예술'전한국자수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보자기 50여 점 공개

'명주조각보', 57×57cm, 조선 19세기
남은 천을 조각조각 이어 만든 보자기는 작은 자투리 천까지 귀하게 여겼던 옛 여인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전해준다. 이름없는 여인들이 한땀한땀 지어 만든 보자기를 통해 조선시대의 가치와 예술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전시가 열린다.

신세계갤러리가 한국의 전통보자기를 소개하는 <보자기: 어울림의 예술> 전시를 오는 8월24일부터 10월 17일까지 개최하는 것.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보자기는 한국자수박물관 허동화 관장의 소장품으로, 모시조각보, 비단조각보, 자수보 등 17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제작된 조선시대의 보자기 50여 점이 공개된다.

실용과 예술의 어울림

조선시대의 주거공간은 비교적 협소하고 낮은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신축(伸縮)과 용적이 자유로웠던 보자기는 가재 도구로나 운반 도구로나 이상적이었다.

보자기는 어떤 물건이든 구애 받지 않고 다채로운 변형으로 감쌀 수 있으며 보관과 소지의 편리함에서 포용과 자유, 실용을 중시하는 우리문화의 특성이 잘 담겨있는 조형예술이다.

'조각옷보', 100×100cm, 조선 19세기
위로는 왕가의 예의와 격식을 위한 각종 의례와 의식 생활에 사용되거나 양반가 규방의 품위와 안목을 담았으며, 서민의 보자기는 소박한 미의식을 반영하여 만들어짐으로써 당대 시대정신과 미학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섬유예술이다.

이중에 특히 수보(繡褓)와 조각보는 발상의 독창성과 문양, 색채, 구성의 아름다운 조화로 그 예술적 가치가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수보: 자유로운 표현과 문양에 담긴 꿈

수보(繡褓)는 조각보와 함께 유품이 많이 전해지는 대표적인 보자기로, 현재까지 발견된 수보는 대개가 강릉을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에서 나온 것이다. 유품이 드문 다른 보자기에 비해 수보가 많이 전해오는 이유는 수보 문양에 담긴 민간신앙적 요소 때문인 듯하다.

수보의 문양은 전통 민속예술에 거의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세의 복락 기원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소원성취를 비는 뜻에서 자연히 수보를 소중히 간직하려는 마음이 여느 보자기와는 달랐을 것이다.

'흑색화문(黑色花紋)모시보', 67×65cm, 조선 19세기
주로 혼례 등의 길사(吉事)에 쓰였으며, 바탕천이 대부분 기계직 면직물로 제작된 점은 여타 자수품과 수보의 다른 점이다. 문양으로는 이전의 자수품에서 보이는 사실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표현 양상을 보여 주고 있어, 조선 후기 민화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표현법과 닮아 있다.

이번 출품작 중 특별히 눈여겨볼 만한 수보 작품은 비교적 자유롭게 제작되었던 민보(民褓)와 구분되는 궁중용 보자기(宮褓) 2점이다. 특히 <화조문수보 花鳥紋繡褓>는 주황색 비단에 각종 꽃문양과 길상문양이 격식 있고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으며, 뒷면에 '1653년10월'이라고 제작연도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자수박물관이 이번 전시를 통하여 처음으로 공개하게 된다.

조각보: 구성과 색의 어울림

전승하는 옛 보자기 중에서 특히 조각보는 그 특이한 조형 양식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조각보는 쓰다 남은 색색의 천 조각을 이어 만든 것인데, 바느질을 하다가 남은 천을 활용한다는 지혜의 소산이므로 주로 일반 서민층에서 만들어졌고, 궁보(宮褓) 중에서는 아직 조각보가 발견된 예가 드문 편이다.

그리고 대다수 조각보는 무슨 용도로 쓴다는 목적 없이 만들었기에 정해진 용도에 맞추어 만들어진 궁보에 비해 다용도로 쓰였던 것이다.

'모시조각보', 86×86cm, 조선 19세기
천 조각을 마름질한 형태와 아울러 색상의 조화가 뛰어난 조각보는 그 각양각색의 천 조각들이 모여 빚어내는 면의 구성과 색의 배합에서 나타나는 조형세계는 현대 추상화의 걸작에 비견될 정도로 그 예술성이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다.

출품작 / 수보

<화조문수보 花鳥紋繡褓, 81x93 cm, 1653년10월>
궁중용 보자기로 각종 꽃문양을 비롯하여 학과 괴석 등의 길상문양이 어울려 있다. 맑고 고운 염료로 염색한 천의 색감이 은은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보자기 뒷면에는 1653년 10월이라는 글씨가 써있어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다.

<도주문보 陶朱紋褓, 49x49 cm, 조선 19세기 >
이 도주문보는 궁중에서 썼던 보자기로, 도주(陶朱)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다. 도주란 기원전 5세기경 춘추시대 사람인 범여를 가리키는 말로, 그는 벼슬을 버리고 상업으로 커다란 부를 쌓게 되어 후세에 부자의 대명사로 불리었다. 그런 이유에서 도주보는 큰 부자가 되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번개문수보, 36x36.5 cm, 조선 19세기>
강원도 지방의 보자기로 검정색 바탕천에 각색실로 양식화된 번개무늬가 수놓여져 있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검정색 바탕천을 대담하게 도입한 사유는 작가의 의도가 밤풍경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화조문수보 花鳥紋繡保', 81×93cm, 1653년 10월
출품작 / 조각보

<명주조각보, 57x57cm, 조선 19세기>
명주 겹보로 안감과 겉감 두 겹으로 만든 보자기이다. 겉감과 안감은 청홍(靑紅)이나 홍황(紅黃)등으로 서로 대비되는 양색(陽色)으로 대비되어 있다. 이는 행운과 길상을 상징하는 색깔로서 보자기 전반에 걸친 주류색이기도 하다. 끈없는 보자기는 물품을 싸서 함 등 속에 넣어둘 때 사용했다.

<조각옷보, 100x100cm, 조선 19세기>
면으로 만들어진 조각옷보로 한국자수박물관의 대표적인 보자기이다. 잘 사용하지 않는 진한 색을 대담하게 구성하여 색채감각을 나타냈다. 면이지만 얇아서 색이 비치는 느낌을 준다. 한쪽 끝에 길이가 다른 끈을 달아 나머지 귀퉁이를 접고 그 끈으로 묶도록 했다. 끈 쪽에 나비와 꽃무늬를 수놓아 장식적 효과를 두었다.

<명주조각보, 74x75cm, 조선 19세기>
천 자투리를 이어 꾸미는 대다수 보자기들에 비해 이 보자기는 밑그림을 구상하고 거기에 따라 만든 제작의도가 보인다. 시원스럽게 뻗은 직선과 넉넉한 공간의 비례는 현대적 미감에 뒤지지 않는 탁월한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다. 끈이 달린 보자기 네 귀에 천을 덧대어 장식효과와 더불어 실용성을 강조한 점도 눈길을 끈다.

<흑색화문(黑色花紋)모시보, 67x65cm, 조선 19세기>
한가지 흑색모시로 만든 보자기로 중앙에는 홀치기 기법으로 꽃무늬를 예쁘게 나타냈다. 대칭되는 구조로 정확하게 디자인 한 상태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도주문보 陶朱紋湺', 49×49cm, 조선 19세기 (앞)
<모시조각보, 86x86cm, 조선 19세기>
불규칙한 패턴으로 이어붙인 조각과 천의 미묘한 색상변화에서 조형성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중간중간 기운 흔적은 조각보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도주문보 陶朱紋湺', 49×49cm, 조선 19세기 (뒤)
'번개문수보', 36×36.5cm, 조선 19세기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