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궁서 공연, 체험 프로그램… 새로운 문화공간 탈바꿈
궁궐은 역사드라마 속 공간이었고, 학교 역사 과제를 위한 문화탐방지였으며,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관광명소일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궁궐은 서민의 생활공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주도로 지난해부터 이른바 5대궁을 널리 알리고 함께 향유하기 위한 작업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 주로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되고 있는 궁궐은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공연 보러 궁궐에 간다?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반. 직장인들은 한 주간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꿀맛 같은 늦잠을 잘 만한 시간이지만, 창경궁 안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국립국악원이 매주토요일 아침에 여는 고궁 음악회 '창경궁의 아침'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아닌 게 아니라 이날 명정전과 통명전에서 열린 공연은 옛 잔치의 형식을 재현한 것이었다. 특히 이날 처음으로 궁궐 음악회가 열린 통명전에서는 전통 다과상까지 제공돼, 시각과 청각, 미각이 함께 즐거운 옛 잔치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
지난 27일 덕수궁에서는 낮부터 자정까지 제4회 서울문화의 밤 행사도 열렸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펼쳐진 축제는 '덕수궁 클래식의 밤', '미술관 한밤 음악회'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회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궁궐로서는 유일하게 석조전, 정관헌 등 근대식 전각과 서양식 정원, 그리고 분수가 있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중세와 근대가 잘 어우러져 있는 덕수궁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도 소재에 맞게 9월 1일부터 고궁 안으로 들어온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왕세자의 행방을 찾기 위해 분주해진 궁궐의 모습과 사건들을 다룬 이 작품은 경희궁 숭정전 앞마당에서 더 현실감 있는 무대로 되살아난다. 숭정문과 회랑을 이용해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무대는 고궁을 찾은 관람객들을 자연스럽게 이끌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최근 궁궐 내의 문화 관람이나 체험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는 데는 2009년부터 '살아 숨쉬는 5대궁 만들기' 사업을 추진해온 문화재청의 노력이 컸다.
이 사업은 궁궐을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역사문화명소로 만들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한국관광공사 등과 함께 추진한 것으로, 문화재청은 올해 '품격은 높게 문턱은 낮게'라는 추진 방향에 맞춰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전개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대장금의 무대였던 수라간 복원 등 '제2차 경복궁 종합정비 사업'이 착수됐고, 궁궐 주요 전각을 정부부처나 기업의 회의장소로 대여하는 '장소 마케팅'도 본격화됐다.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던 '창덕궁 달빛기행'도 변함없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창덕궁 낙선재에서 시범운영한 궁궐 숙박체험은 창경궁 통명전에서도 실시하여 새터민, 다문화가정, 주한 외국인 유학생 등 참여 대상과 기회도 대폭 늘어났다.
이러한 상품 개발과 관람객들의 반응의 접점에는 궁궐이 서민의 생활공간과 가까워질 수 있는 체험의 기회가 있다. 문화재청 측은 "앞으로 서민과 더 친숙한 궁궐을 만들기 위한 체험 프로그램들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품격은 높게, 문턱은 낮게'라는 모토를 살려 '궁궐의 대중화'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 측은 궁궐 특성에 맞는 왕실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재현용품 확충과 관람서비스 개선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궁궐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턱이 낮아진 궁궐은 이처럼 서민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며 과거의 공간에서 현재의 공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