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원 '천년의 몽환'전고대 벽화 닮은 질감, 불변성… 독창적 감성, 재료로 혁신 모색

'夢&律', 2011
그림은 구도보다 질감으로 먼저 다가온다. 거친 듯 투박하면서 내공의 두께가 느껴지는 인상은 강한 흡입력을 지녔다.

일반 물감이나 먹이 아닌 광석을 분쇄해 만든 석채를 쓴 작품은 오래된 벽화를 연상시킨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갤러리와 용산 비컨갤러리에서 17일부터 열린 강성원 작가의 <천년의 몽환>전이 전하는 울림이다.

5년전 보았던 그의 세밀한 공필화(인물색체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서울대 동양화과 재학 중 일랑 이종상 화백에게서 익힌 붓질의 흔적은 여전하면서도 화업의 깊이가 더해졌다.

우선 석채(石彩)라는 재료다. 석채는 만드는 과정부터 인고의 시간을 요한다. 하지만 일단 작품이 돼 생명력을 얻으면 1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물과 불을 견뎌내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유학시절 본 돈황 석굴벽화가 석채로 그려진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고려불화를 연구하고, 95년경 길림성 집안 고구려 벽화를 경험한 것도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삶의 단면', 2010
"고려불화와 영정그림에 관심을 갖고 전통기법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제가 찾고자 하는 모든 것이 벽화에 다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벽화의 그림 같은 형상을 그리게 됐죠."

그가 석채를 재료로 쓴 데는 물질이 지닌 원초성, 불변성과도 유관해 보인다. 작품들은 정형화된 형상을 벗어나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을 단순하게 표현했다.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것에 끌렸는데 벽화가 그렀죠. 내세가 있고 미래가 있다면 현세는 꿈인 게 아닐까. 그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죠."

전시 타이틀 '천년의 몽환'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작품에는 하나같이 여성들이 등장한다. 작가가 꿈꾸어왔던 인물들로 생명을 세상에 낸 어머니,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여인, 에덴의 동산을 떠올리게 한다. '夢(몽)&律(율)' 연작, '신비' '청순' '순수' '人花' 등 한결같이 삶의 근원, 원초적인 형상을 상기시킨다.

그의 작업은 재현의 충실함이 아닌 형태의 재해석으로 나타난다. 인물화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감성적인 형태를 살림과 동시에 형태를 없애는 작업이다. 형태를 살리기도 하고 지우는 상반된 작업은 일맥상통하여 두 작업의 성향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는 그가 동양화를 전공하고, 그 예술적 미덕인 '비움'의 철학이 반영된 측면이다. 그의 작품이 서양화 형태를 띠면서도 동양적 요소가 강하게 묻어나는 이유다.

작품의 석채는 질감에서나 색에서 고구려 벽화를 많이 닮았다. 돈항 석굴벽화가 고구려 벽화의 영향을 받은 것을 고려할 때 그의 석채화는 우리의 고대 미술에 뿌리를 두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듯 강성원 작가는 한국적 감성과 동양적 소재, 작가적 재능과 재료의 재발견을 통해 한국 미술의 혁명을 꿈꾸고 있다. <천년의 몽환>전은 그러한 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으로 9월 9일까지 만날 수 있다. 02-567-165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