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plastic thread, 19'
플라스틱 빗자루. 미술 전시의 재료로 쉬이 쓰일 법하지 않은 이 '플라스틱 빗자루'도 작가 이기일의 손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과거 담배로 로봇의 형상을 구축한 '프로파간다' 작업이나, 성냥의 머리로 만든 군인들을 대치시킨 'Red' 전 등으로 이미 주변 사물들을 제 작업에 활용하는 데 도가 튼 작가다.

작가는 단순히 사물을 통해 형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의미를 파악해 작업을 이어간다. 담배로 만든 로봇은 거대 기업을, 성냥으로 만든 군인들은 '무감각해진 한반도의 긴장감'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플라스틱 빗자루는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들어와 통칭 '싸리비'의 자리를 꿰찼다. 아침마다 모두의 마당을 쓸어내렸던 '싹, 싹'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알렸고, 더러운 것을 치우는 빗자루의 존재 가치는 나이지리아의 정치집회 퍼포먼스로도 활용됐다고. 평론가 이은화는 "현재에도 존재하는 부조리한 무언가를 쓸어내 버리고 무지갯빛으로 물든 세상에 대한 기원을 빗자루에 담은 건 아닐까"라고 작가의 뜻을 전했다.

오색으로 무늬를 구성하는 플라스틱 실들은 본래 빗자루였음을 쉽게 알 수 없다. 빗자루의 플라스틱 실들은 그 길이를 다르게 하거나 패턴 속에 집어넣는 것만으로 훌륭한 재료가 된다.

초록색 빗자루만 있는 줄 알았더니, 빗자루의 색채 또한 다채롭다. 또 다른 작가의 발견, 또 다른 재료의 발견이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 대안공간 충정각. 02)363-2093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