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人'등 인간과 사회 반영한 창작의 모티프 다양한 변주

국수호 디딤무용단의 '月人-달의 사람들'
요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부쩍 늘어난 탓에, '달'은 서양 호러 콘텐츠의 핵심적인 키워드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달은 우리 전통문화에서도 꾸준히 등장하며 오랜 시간 민족의 정서를 대변해온 한국적 키워드이기도 하다. 특히 공연에서 달은 그런 원래의 기능과 함께 인간과 사회를 반영한 창작의 모티프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전통적인 달의 재해석

연극이나 뮤지컬 등에서도 한국적 정서를 드러내는 달의 요소들은 종종 등장하지만,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장르는 무용이다. 동양적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춤은 달과 인간에 대한 정서를 꾸준히 연구하여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국수호 디딤무용단의 창작춤극 '月人 달의 사람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달의 주기와 기(氣)의 움직임을 접목해 한국춤 특유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이 작품은 달에 대한 한국인의 동양적 사고관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BJ 댄스그룹의 '늑대의 달'
오랫동안 전승되던 동요의 한 부분을 해학적으로 희화화한 장면이나 달의 정령 같은 인물들이 의식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은 전통적인 달의 이미지를 모던하게 재해석한 대목이다.

전래동화 '해님, 달님'을 춤으로 변형시킨 BJ 댄스그룹(예술감독 백정희)의 '늑대의 달'은 원작의 호랑이 대신 늑대를 등장시켜 스토리를 재구성한다. 원작이 자연과 인간을 적대관계로 그렸다면, 여기서는 인간에 다가가려는 늑대의 시선을 반영한 점이 흥미롭다. 영상과 조명 등 무대장치를 활용해 동화적 모티프를 새롭게 재해석한 점이 평단의 호평도 이끌어냈다.

댄스씨어터 까두의 '풀 문(Full Moon)'은 그 제목처럼 만월(滿月)과 인간의 광기를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내면 깊숙한 곳의 원초적인 본능을 끄집어내는 달의 마력은 여러 문학적 표현에서 발견되고 있다.

박호빈 안무가는 그중 최고라 할 수 있는 보름달을 모티프로 다섯 가지 색깔로 변하는 만월과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능들을 연관시켜 표현했다. 단지 춤뿐만 아니라 영상과 조명 디자인, 바디페인팅이 어우러지는 시각적인 앙상블은 달이 선사하는 창의적인 광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세계 보편의 정서와 통하는 달

댄스씨어터 까두의 'Full Moon'
올해 이어지고 있는 달의 공연들은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달의 정서에 호소하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윤미라무용단이 보여준 '달굿'은 달이 차고 다시 기우는 과정에 이야기를 입히고, 그 가운데 제의와 환상, 사랑과 신명의 요소를 담아내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상품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달이 뜨기를 기원하는 제의적 춤,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는 것을 표현한 남녀의 사랑의 이인무, 이별의 과정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만월 이후의 춤 등은 윤미라 예술감독이 의도한 대로 아일랜드의 리버댄스에 비견될 한국적 춤 콘텐츠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말 공연된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장현수의 신작 '사막의 붉은 달'은 인생을 황량한 사막에 비유한 작품이다. 고난과 역경의 대명사인 붉은 사막에서 힘든 여정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행복한 현재를 꿈꾸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막의 달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절망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절망 속에서 꿈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장현수는 오브제나 움직임뿐만 아니라 클래식, 재즈, 연극적 요소 등을 다양하며 곁들이며 달이 주는 정서를 재해석하고 있다.

한편 '태권도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정식 발효된 2008년 첫선을 보인 는 '태권도'와 '달'이 두 개의 키워드인 무예춤(武舞)이다.

장현수의 '사막의 붉은 달'
당시에는 태권도를 중심으로 하는 넌버벌 퍼포먼스로 회자됐지만, '달하('달님이시여'의 고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는 윤회사상 등의 동양적 사고관이 담겨 있다. 오는 30일 공연을 앞둔 이 작품은 10월에는 북미 5개 도시 순회공연도 계획하고 있어 외국 관객들이 한국문화에서 달의 정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미라무용단의 '달굿'
경기도립무용단의 '태권무무-달하'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