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인사들 기업의 문화예술활동 지원 위한 법 제정 촉구 한 목소리

8월 30일 메세나법 제정을 위한 공동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메세나협의회 박영주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윤선 의원, 이성헌 의원(이상 한나라당), 박영주 회장,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이성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지난 6월 3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4회 차이콥스키 국제음악콩쿠르는 한국의 날이었다.

베이스 박종민이 남자 성악부문 1위, 소프라노 서선영이 여자 성악부문 1위, 손열음이 피아노 부문 2위, 조성진이 3위, 이지혜가 바이올린 부문 3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한 국가에서 다섯 명의 상위 입상자를 낸 것은 극히 이례적이어서 세계를 놀라게 했고, 주최국 러시아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에따라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도 크게 높아졌다.

입상자 중 박종민을 제외한 4명이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지원하는 금호영재프로그램 출신이다. 13년이 된 금호영재는 지금껏 1000명 넘는 연주자를 배출했다.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가 예술 꿈나무들을 발굴, 지원할 뿐만 아니라 국가브랜드까지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국내 문화예술을 위한 국가, 또는 민간 차원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국가예산 대비 전체 문화예산 비중은 1.1%로 OECD 전체 편균인 1.8%에도 못미치고, 문화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초예술에 대한 비중은 국가예산의 0.1%로 매우 낮다.

민간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 역시 미미한 수준이다. 전체 기부액 중 문화예술 분야는 1%에 못미치고, 2010년 기준으로 전체 40만여 개 법인 중 예술지원에 참여한 법인은 600여 개에 불과하다.

메세나법을 대표 발의한 이성헌 의원이 입법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조윤선 의원, 오른쪽은 박영주 한국메세나협의회장.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예술 기부금에 대한 조세 혜택을 골자로 하는 '메세나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메세나법) 도입을 위해 각계 인사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냈다.

한국메세나협의회(회장 박영주)는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이성헌ㆍ조윤선 한나라당 의원,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이성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예총) 회장, 김용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전무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메세나법의 조속한 제정을 주장했다.

박영주 회장은 "프랑스의 경우 메세나ㆍ협회ㆍ재단에 관한 법률이 2003년 제정돼 기업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 전반의 지원이 늘었다"며 "메세나법은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을 발전하는 데 중요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2003년 메세나법을 도입한 후 2002년 3억4000유로(약 5100억원)이던 기업의 예술기부금이 2008년 약 10억유로(약 1조 5000억원)로 증가하고, 200인 이상 고용 기업 중 18%인 6000개 기업이 기부에 참여하는 효과를 올렸다. 또한 영국, 미국, 일본 등 문화선진국도 각각 적극적인 세제 지원책으로 기업의 예술지원을 유도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이날 각계 인사들이 제정을 촉구한 법은 2009년 1월 발의된 메세나법(이성헌 의원 대표발의)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조윤선 의원 대표발의)이다.

하지만 두 법안은 국회서 장기간 계류 중이다. 메세나법은 법안 발의후 1년 반이나 경과한 지난 4월 국회 문방위 상임위원회에 상정됐고, 조세특례제한법은 지난해 폐기된 뒤 올 5월 지원 내용이 다소 완화된 상태로 다시 수정 발의됐지만 법안 통과가 불투명하다.

두 법안의 큰 골자는 메세나 지원 활동에 대한 세제 지원이다. 메세나법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예술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 △문화예술 관련 비영리법인에 대한 지방세 감면 △기업 문화예술을 활용한 교육훈련비 세액공제 △문화접대비 손금산입 한도 확대 등 세제 혜택을 담고 있다.

즉, 예술기부금의 경우 손금산입(기업회계에서는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지만 세법 회계상 비용으로 인정)에 더해 기부금 10%를 추가 세액공제하고, 문화예술 관련 지방세는 현행 세율 0.2%를 0.1%로 인하하며, 기업의 문화예술 교육훈련비 지출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20%, 대기업 10%의 세액공제를 한다.

메세나 법안 통과에 가장 큰 걸림돌은 형평성 문제와 세수 감소에 대한 우려다. 이성원 의원은 "기재위 소속 의원들이 세수감소를 염려하고 있지만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더 크다"면서 "동료의원들을 설득해서 빠른 시일 내에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액공제 형평성 문제에 대해 조윤선 의원은 "우리나라 전체 기부액 중 사회복지 등 다른 분야의 기부는 99.8%인 반면 문화예술분야는 전체의 0.2%에 불과하다"며 "세액공제 등 여러 혜택을 통해 문화예술 기부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인을 대표해 발제한 이성림 한국예총회장은 "우리 문화예술인들의 62.8%가 월 100만원 이하의 수입을 올리고 있을 정도로 창작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며 "메세나법 제정은 기초예술계의 고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대책"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국회가 법 통과를 계속 미룬다면 40만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내년 총선과 연계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며 현장의 절실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오광수 문화예술위원장은 "문예진흥기금이 한해 평균 320억원씩 고갈되고 있다."면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분야의 기부는 미미한 것이 현실인 만큼 예술계의 창작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메세나법 제정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김용연 전무는 "기업의 메세나 지원은 단순히 촉망받는 예술가 한 명을 돕는 차원이 아니다"며 "예술의 발전과 국격은 물론,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영주 한국메세나협의회장은 간담회 후 "메세나법이 통과되면 300억원 정도의 세수감소가 예상되지만, 그 3배가 넘는 1000억원 정도의 기업 투자가 예상돼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현실적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회장은 "문화 강국이 세계 강국이 되고,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창의력이 경쟁력이 되는 문화경쟁 시대가 도래했다"면서 "어떤 산업보다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 문화산업 발전을 뒷받침할 적극적인 제도적 장치(메세나법)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