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새벽과 연출가 안경모의 훈훈한 동행

배우 송새벽(오른쪽)은 별로 말이 없다. 때론 수줍음을 탄다는 오해도 받는다. 그러나 친형 같은 연출가 안경모(왼쪽)를 만나면 달라진다. 이들이 2007년 초연부터 2009년 지방공연까지 함께 했던 연극 '해무'의 세번째 앵콜 공연을 위해 2년 만에 다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2011년 9월20일, 오후 5시30분 즈음.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1가 성균관로 15길 입구의 자그마한 카페에서 2년 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온 송새벽(32)이 2007년 연우무대 창립 30주년 기념작으로 초연한 이후 3번째 앵콜 공연을 갖는 연극 ‘해무(海霧)’의 안경모 연출과 자리를 함께했다. 훈훈한 동행을 위해서다.

1919년 만해 한용운이 중앙학림 학생들과 전국 불교인들의 시위계획을 논의한 곳이었던‘3·1 독립운동 기념터 중앙학림’이란 작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이 건물의 3층이 바로 연습실. 유서 깊은 공간에서 의미 있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가 새벽이를 다시 불렀어요. 스케줄이 많고 바빠서 걱정했는데 초연 때부터 맡았던 ‘동식’역을 다른 배우가 하면 안 된다며 흔쾌히 오케이를 했어요. 너무 고맙지요.”

“어제 첫 미팅을 가졌는데 너무 편하고 좋아요. 제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동식이’는 나만이 가장 잘 할 수 인물, 나이고 싶은 인물이란 생각이 들 때마다 행복해요.”

마치 친형제 같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속마음까지 훤히 알고 있는 듯 하다.

송새벽은 2009년 여수, 안동, 김해를 도는‘해무’의 지방공연을 끝낸 뒤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마더’, ‘방자전’, ‘시라노 연애 조작단’, ‘위험한 상견례’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연기력 있는 배우로 인정 받았다.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통했다. 그리고 2년 만에 돌아왔다.

“영화나 연극이나 연기자에겐 큰 차이가 없어요. 2년 만에 다시 연극 무대에 돌아왔다고 충전이란 말을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고요. 그저 연기의 연장선이라 생각해요. 경계선은 없어요. 작품이 이야기하는 부분이 맞아 떨어지면 영화든, 연극이든, 드라마든 따질 것이 없잖아요. ”

'관객과 호흡' 중독돼

송새벽에게 연극이란 무엇일까.

“연극은 중독이에요. 연기자는 관객과 생생한 호흡을 함께하면서 중독이 됩니다. 그 느낌은 언제든 잊히지 않아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 ‘해무’는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겁다. 거친 바다에 떠있는 어선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는 선원들과 밀항을 시도하는 조선족들이 극중 인물이다.

송새벽과 안경모 연출의 마음 속엔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안경모 연출은 구체적으로 뱃사람을 알지 못했다. 처음 희곡을 읽고 난 뒤 짬이 날 때마다 가까운 바다를 찾았다.

“포구에서 작업하는 선원들을 보면서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등을 생생하게 전하는 것이 연출자의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산불'잇는 리얼리즘 찬사

초연을 앞두곤 배우들과 함께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여수를 찾아가 정박 중인 어선에 둘러봤다. 갑판, 조타실, 어창(魚艙) 등의 공간을 확인한 뒤 극중 인물들의 절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그리고 연우 무대에 올려 소극장 특유의 밀착감을 극대화시키면서 ‘차범석의 산불을 이어 리얼리즘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는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2008년 첫 앵콜 공연에선 거칠기만 하던 초연 분위기에서 배우들의 에너지를 다듬었고, 2009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공연 때는 무대 디자인의 변화를 시도했다.

“2009년 공연을 하면서 바다와 배라는 공간 속에서 몸부림 치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해무’는 드라마의 크기가 충분히 받쳐주는 연극이기 때문에 이번에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겨도 드라마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초연 때 배우들과 함께 삶의 깊이, 절망과 희망의 크기를 더 세밀하게 그려내려고 합니다.”

송새벽은 공연을 올리기 전 늘 기도를 했다.

“실화가 배경인 탓도 있지만 특히 여수 공연 때는 살아남은 누군가가 객석 끝에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어요. 극중에서 동식이와 사랑에 빠지는 ‘홍매’가 지금은 할머니가 돼 우리들이 어떻게 그 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보는 것 같았어요.”

연극 ‘해무’는 송새벽이 신철진, 김용준, 유인수, 권태건, 나종민, 박혜영, 손수정, 박동욱, 이효상 등과 함께 무대에 올라 11월4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순수한 청년 선원‘동식’으로 돌아온 송새벽과 안경모 연출의 바람은 똑같았다. ‘해무’의 등장 인물들과 함께 힘겨운 생활을 잠시나마 공유하길 바라고 있다.

연극 ‘해무’는.
공미리 잡이 어선 ‘전진호’가 마지막 희망을 안고 출항한다. 빚더미에 앉은 선장과 삶의 끝자락으로 내몰리는 선원들은 또다시 조업이 순탄치 않자 극한 대립을 보인다. 결국 밀항을 시도하는 조선족을 태운다. 결국 거친 풍랑에 맞서면서 해경선을 피하느라 배 밑바닥 어창에 숨어있던 조선족들이 질식사하고, 선원 동식과 사랑에 빠진 조선족 홍매만 살아 남는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조선족 시신을 수장시키고, 살아남은 홍매가 사건을 발설할까 두려워진 선원들의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인 김민정 작가가 쓴 ‘해무’는 2007년 한국연극 ‘베스트 7’에 선정된 작품이다.



글=이창호 기자 cha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