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빅보이' 선정작… 연극 '얼굴을 마주하다'기존 연극적 어법에 비언어적 표현방식 덧씌워… 8알까지 두산아트센터서

연극 '얼굴을 마주하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주용필 연출과 5명의 배우 등 젊은 예술가들이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개막을 앞두고 땀 흘려 연습하고 있는 극단 예모리의 단원들. 앞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선근, 박수민, 정원태, 주용필 연출, 최수호, 김연주. 김지곤기자
'의자 뺏기 놀이'를 시작한다. 의자는 넷, 사람은 다섯. 누군가 1명은 떨어져야 할 운명이다. 다시 의자는 셋, 사람은 넷. 또 누군가 1명은 탈락해야 한다. 놀이는 계속된다. 최후의 승자는 한 명뿐이다.

극단 예모리가 29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무대에 올리는 연극 '얼굴을 마주하다'는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삶을 위해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자리를 찾아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88만원 세대'들이 주인공이다.

청소원 성규와 무역회사 신입사원 지환은 하는 일이 분명 다르다. 그러나 하루 하루의 삶은 비슷하다. 아주 닮아 있다.

주용필 연출은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희곡을 쓴 김록원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우리 모두 남과 다른 성질이 있기 전에 남과 같은 성질이 있는 '사람'임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연극'얼굴을 마주하다'는 8월1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마포구 홍익대 주변에서 열린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실험성 강한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이다.

기존의 연극적 어법에다 새로운 표현 방식과 비언어적인 표현 방식을 덧씌웠다. 마임을 하듯 배우의 몸이 양변기가 되기도 하고, 나무 상자로 만든 소품을 배우들이 손으로 두드리며 효과음을 만들기도 한다. 배우들이 서로 잡고 있는 고무줄을 통해 인간 세상의 팽팽한 긴장감을 상징적으로 알려준다.

이 연극의 막간을 알려주는 암전이 딱 1번 밖에 없다. 장면 전환은 배우들의 몸짓이나 이미지를 통해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를 분명하게 객석에 전달하면서 연극적인 무대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 축제 때와 극장이란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관객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연습 과정에서 주용필 연출은 정원태(박지환 역), 김연주(청소부 아줌마 역 외), 박수민(학원생역), 최선근(이성규 역), 최수호(과장 역 외) 등에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극중 인물을 확실하게 몰입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렇게 자신과 소통하고, 무대 위에서 배우끼리 소통해야 객석의 관객들과도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하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얼굴을 마주하다'는 주제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특별한 이야기로 끌고 가지 않는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지금 이 시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뻔한 이야기'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몇몇 상황 속에 역발상으로 웃음의 코드를 심어 놓았다.

두산아트센터에 있는 인터뷰 룸에서 연극‘얼굴을 마주하다’의 주용필 연출과 김요한 프로듀서. 김지곤기자
극단 예모리는 올해 4월 창단했다. 다양한 분야의 젊은이들이 모여 정기적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일회성 공연에 그치지 않고 수정과 보완을 통해 진화하는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그 와중에 복합 장르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줘 두산아트센터와 서울 프린지 네트워크가 공동으로 발굴 육성하는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프로젝트 빅보이'의 혜택을 받게 됐다.

주용필 연출은"프린지가 끝난 뒤 지원 프로그램 작품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깜짝 놀랐다"며 "왜 뽑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너무 감사했다. 좋은 공연으로 보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고 말한다.

"젊은 예술인 꿈 전폭 지원"

■ 프로젝트 빅보이는…

"동시대를 사는 젊은 예술인들의 새로운 목소리와 예술적 잠재력, 진정성, 열정 등을 다각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지원작을 선정한다. 정형화된 틀이나 기준은 없다."

서울 프린지 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차세대 예술가를 발굴 육성하는 '프로젝트 빅보이(Project Big boy)'를 진행하고 있는 김요안(36) 두산아트센터 프로듀서를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있는 공연장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는 올해 지원작으로 선정된 연극 '얼굴을 마주하다'의 주용필(34) 연출도 함께 했다.

'프로젝트 빅보이'는 올해로 3년째를 맞는다. 해마다 2~3편의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선정해 극장을 무료 대관하고, 연습실을 제공하고, 제작비를 지원하고, 홍보와 마케팅을 도와주고 있다. 올해부터는 발굴에 그치지 않고 육성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리마인드 빅보이(Remind Big boy)'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해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지난해 선정작인 연극 '다자이 오사무 단편전-개는 맹수다'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올해의 지원작은 총 60편. 그 중에서 연극 '얼굴을 마주하다'와 음악 공연 '퓨처 재즈(Future Jazz)'가 선정됐다.

전자 음악에 재즈 컨셉을 적용시켜 어쿠스틱 악기들의 즉흥 연주를 컨트롤러와 컴퓨터로 연결해 실시간으로 소리와 행위를 만드는 '퓨처 재즈'도 10월14일과 15일 이틀 동안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김요한 프로듀서는 "열린 공간에서 축제의 장으로 열리는 프린지 페스티벌과 함께 하면서 극장이란 제한된 공간에서 느끼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젊은 예술인들의 흐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축제와 극장이 만나는 과정에서 자칫 프린지 페스티벌이 단순하게 지원만을 노린 경쟁의 장으로 변모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늘 열악한 여건 속에서 창작 활동을 해오던 극단 예모리의 대표이기도 한 주용필 연출은 "젊은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이 더울 활성화되길 바란다"며 "우리 역시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거듭나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연극 '얼굴을 마주하다'는 비슷한 시도를 하는 다른 작품도 많았지만 진솔함과 담백함으로 '88만원 세대'의 고민을 그려낸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극의 깊이를 더하고, 자연스런 무대 어법으로 확장하는 것은 고스란히 연출과 스태프, 배우 등 젊은 창작자들의 몫이다.

두산아트센터의 지하 공연장으로 내려가는 모퉁이에는 벌거벗은 온몸에 붉은 칠을 하고 허리를 굽혀 고개를 처든 아기 돼지와 놀고 있는 중국 조각가 천원링(陳文令)의 조각상이 놓여 있다. 이 작품이 바로 '빅보이'다.



이창호기자 cha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