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하고 절제된 남성 인체 위에 강·별자리 새겨 광대한 이야기 압축 눈·입 생략하는 '침묵의 은유' 특징… 특유의 작가주의 '한국적 원형' 인정

하늘을 경배하듯, 땅을 위무하듯, 해를 마주하듯, 비와 바람을 부르듯, 신을 맞이하듯, 운명을 바라보듯 경건하게 서 있는 사람. 머리와 어깨 팔에는 구름, 해, 달, 번개 등을 이고 두 발은 가지런히 대지를 딛고 있다.

조각가 최병민(62)의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고도 강인한 육체, 절제되고 고요한 동작, 시대와 공간을 구별하는 의복이나 배경이 없는 나신의 직립이 특징이다. 주로 남성이 소재다.

1992년 금호미술관, 1995년 나무화랑에서 개인전을 연 이후 2008년 13년 만에 다시 개인전을 갖고 변치 않는 작가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오는 12일부터 16일까지 다시 서울 종로구 관훈동 나무화랑에서 '최병민 조각전'을 갖는다.

특히 근작은 설명이나 서술을 배제한 인체의 동작, 원하는 표정만을 남긴 채 여타의 감정들을 소거한 얼굴 구조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이미 머리 속에 완벽하게 정리를 끝낸 인간과 인체를 위해 필요 없는 부분을 거세해가며 의도한 주제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최병민의 대표작인 '응시' 연작은 혼백이 분리되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육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살아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아득한지 그 몸에 별자리와 산과 강을 새겨 놓았다.

최병민 조각의 미덕은 그만의 조각적 형식과 함께 넓고 광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인체에 축약해 내는 침묵의 음유(吟遊)와 은유(隱喩)의 표현법이다. 침묵은 인물의 눈과 입의 생략과 일맥상통한다. 그 중에서 눈의 약화와 입의 생략이 작품 읽기의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응시'라는 제목처럼 흐리게 처리된 눈은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지속적으로 의식적인 바라보기 또는 관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병민은 30대 후반이던 1988년 음각부조의 독특한 형식으로 작업한 인체 조각으로 첫 개인전을 가졌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환조로 형식을 바꾸고 뼈와 살을 훑어 버린 특유의 인체 해석으로 진화하면서 고대의 신화, 전설, 샤머니즘 등을 작업의 배경으로 삼았다.

화단에선 최병민의 작업을 '작가주의'적이고, 주체적이며 한국적인 조각의 원형이라고 인정한다. 출세주의나 상업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뚝심 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호기자 cha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