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박현주·권성문 등 '사모펀드'조성에 나서

토종 펀드시장은 별들의 전쟁터
이헌재·박현주·권성문 등 '사모펀드'조성에 나서

왼쪽부터 이헌재, 박현주, 권성문

“외국 펀드에 밀릴 이유가 없다. 우리 손으로 이에 대항할 수 있는 토종 펀드를 만들겠다.” ‘점령군’ 외국 자본에 대한 우려감은 본격적인 실력 과시로 나타나고 있다. 그 선봉에 선 것은 외환 위기 이후 한국 경제 재건 과정에서 스타로 군림했던 경제인들. 저마다 ‘토종 론스타’ 를 만들어 외국 자본에 대항하는 선봉장이 되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름 석 자 만으로도 금융 시장에 적잖은 파급을 몰고 올 수 있는 ‘이헌재 펀드’다. DJ 정부의 경제 정책에서 구조 개혁을 빼놓을 수 없고, 구조 개혁을 말하면서 이헌재라는 인물을 빼놓기는 힘들다. 초대 금융감독위원장과 재경부장관을 차례로 지내면서 금융ㆍ기업 구조조정의 최전방 지휘관으로 활약했던 그는 국민의 정부 임기 전반부가 낳은 최고의 스타였다.

이헌재 전 장관이 이제는 야인의 신분으로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를 설립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펀드 조성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김영재 솔로몬금융 회장(전 금감위 대변인)은 “이 전 장관이 최근 외국계 펀드가 국내 금융기관을 인수하면서 드러나고 있는 부작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며 “경제계의 명망 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설립추진위원회를 오는 1, 2월쯤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환 위기 후 외국 자본이 들어와 선진 금융기법을 전파해 줄 것을 기대했지만, 외국계 펀드가 인수한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의 경우 기업 대출을 기피하는 등 단기적인 자본 이득을 챙기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헌재 펀드’의 규모는 2조~3조원 가량. 새해에 정부 지분 매각을 통해 민영화하는 우리금융지주회사를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다.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과거 외국 자본 유치의 전도사로 명성을 날렸던 이 전 장관이 이제는 거꾸로 외국 자본에 맞선 대항 자본을 구성하는데 팔을 걷고 나선 것은 아이러니란 얘기다. “스스로 정책 실패를 만회해 보려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일각의 해석도 삐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외환 위기가 낳은 또 한 명의 스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도 사모 펀드 조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박 회장은 증시가 뜨겁게 달구어졌던 1999년 자신의 이름을 건 뮤추얼 펀드들이 100%가 넘는 수익을 달성한 데다 벤처 투자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른바 ‘박현주 신화’를 만들어 낸 인물. 하지만 2000년 주가 급락으로 ‘미래에셋 박현주 1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펀드가 큰 손실을 보면서 도피하듯 미국 행을 택했었다.

박 회장이 국내에 다시 들어와 활동을 재개한 것은 2003년 1월. 박 회장은 최근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전체 주식의 40%를 차지했는데 투자 자산을 운용하는 투신운용사마저 외국인들이 지배하면 한국 자본시장은 물론 기업들도 외국인의 지배 하에 들어가 자본 주권이 없어질 것”이라며 사모 펀드 설립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는 연내에 SK투신 인수를 마무리 한 뒤 이를 사모펀드 전문 자산운용사로 탈바꿈시키기로 했으며, 이를 통해 국민연금, 군인공제회 등 국내 대형 자본과 연계해 국내 대형 금융기관 인수에 뛰어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박 회장과 함께 증시의 쌍두마차로 통했던 권성문 KTB 네트워크 사장도 사모 펀드 시장 진출을 다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 업체로서 외환 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 사업을 해오면서 쌓은 노하우를 십분 활용해 사모 펀드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것. 권 사장은 사모 펀드를 통해 금융 기관보다 산업은행과 KEMCO, 예금보험공사 등이 매각을 추진중인 일반 기업 인수에 나서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이 낳은 금융계 스타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도 1조~2조원 규모의 사모 펀드 조성을 계획중이다. 황 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올 상반기 진행된 금호타이어 인수전에서 칼라일ㆍJP모건 컨소시엄에 맞서 군인공제회가 승리한 것을 보고 (토종 사모 펀드 운영에)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4-01-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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