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검찰소환 앞둔 폭풍전야 불구 글로벌 경영체제 구축에 전력

'재계 인사의 계절' 내실다지기 포석
경영진 검찰소환 앞둔 폭풍전야 불구 글로벌 경영체제 구축에 전력

재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연초부터 살얼음 판을 걷는 분위기다.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재계 총수와 고위 경영진들이 잇따라 검찰 소환에 나서야 하는 등 경색된 분위기가 지난 연말의 연장선상에서 재현되고 있다. 따라서 그룹 임원 인사와 신년 경영 계획, 해외 사업자와 연계된 사업 등 연초 진행해야 할 각종 경영 현안들이 자칫 차질을 빚거나 지연될 수도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삼성과 LG, SK,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그룹들은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저마다 올해의 경영 목표와 늘어난 투자 계획 등을 앞 다퉈 발표하며 연초부터 그룹 내부 추스리기와 대외 신인도 관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경기의 완연한 회복 조짐과 국내 경기의 동반 상승 등 예상 호재를 적극 활용해 그룹의 위상 강화는 물론 세계 시장 공략에 보다 적극 나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LG를 제외하고 삼성, 현대차, SK 등 아직 그룹 인사를 하지 않은 기업들은 일단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과 고위 경영진의 소환 결과 등을 예의 주시한 후 1월말이나 2월초에 그룹 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다. 결국 검찰의 임원 소환이 기업 인사에 어느 정도 입김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소환과 수사가 마무리돼야 핵심 경영진의 진퇴 여부가 판가름 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기업 경영의 화두로 ‘초일류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투명 경영 강화’ 등을 꼽은 재계에는 따라서 연초 ‘세대 교체’를 테마로 한 인사태풍이 예고 된다. 최근 계열사 사장단을 대거 물갈이한 LG그룹이 대표적이다. 성과주의 인사 원칙에 따른 실적 부진의 책임을 묻고, 잇따른 악재에 맞서 그룹 분위기를 쇄신해 낸다는 등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노린 대대적인 인사다.

새 피 공급으로 분위기 쇄신

LG는 또 데이콤, LG홈쇼핑, LG에너지, LG파워, LG MRO, LG경영개발원 등 6개 계열사의 대표를 바꿨으며 앞으로 남은 계열사 인사에서 1~2 곳의 대표를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50대 후반에서 60대에 걸친 나이 많은 사장들이 교체돼 외견상 ‘세대 교체’의 색채가 강하지만, 더 들어가면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등 문책 인사의 성격 역시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밖에도 6년간 LG홈쇼핑을 이끌며 회사를 업계 1위로 이끌어온 최영재(61)사장도 강말길(60) 전 LG유통 부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났다. 최 회장의 교체를 놓고 ‘장기간 대표직을 맡아와 퇴임할 시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대선 자금수사로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 교체돼 각종 억측을 낳고 있다. 또 올해경영의 최우선 과제를 글로벌 경쟁력 확보로 제시한 LG는 LG전자 중국지주회사 노용악(63) 부회장을 상임고문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젊은 피’를 수혈하는 한편 LG화학 산업재사업본부장인 배윤기(56) 사장도 해외파인 박윤기 사장으로 교체하는 등 미래 승부사업과 주력사업 분야를 주도하기 위한 체제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데이콤의 경우, 2001년부터 데이콤과 자회사인 파워콤 대표를 맡아온 박운서(64) 회장이 정홍식 전 ㈜LG 통신사업 총괄사장에게 대표직을 물려 주고 고문으로 들어 갔다. 정사장의 데이콤 대표이사 임명은 향후 통신분야에서 유무선 통합 환경에 대비한 그룹 통신 사업 전략의 재정비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됐지만 일각에선 박 회장의 나이와 함께 통신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 역시 교체 배경으로 덧붙여졌을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반면 삼성과 현대차 등 ‘잘 나가고’ 있는 그룹들은 올해 경영 목표를 매출 등 외형성장과 내실구도 확립에 두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따라서 글로벌 리더십으로 똘똘 뭉친 젊고 유능한 40대 인재들의 발탁인사가 어느 해보다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 되는 등 이번 인사는 전반적으로 ‘세대교체’를 테마로 해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

40대 인재들 전진배치

특히 이들 그룹에는 내부적으로 2세 경영체제 강화를 위한 점진적인 세대교체에 역점을 둔 인사 방침에 초점을 맞춰 40대 임원들의 승진 인사가 눈?띌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계열사들은 지난해 우수한 영업 성적과 신기술 개발 분야에서 약진을 보인 40대 임원들의 발탁 승진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인 채 내정자들을 둘러싸고 술렁이는 분위기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올해 중 사장급으로의 승진 인사는 없을 것”이라며 “반면 40대 초ㆍ중반 원들의 승진폭은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해, 2세 경영 체제 강화라는 문제가 내부적으로는 커다란 사안임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현대차 그룹이 2004년 시무식을 갖고 외형성장과 내실을 다질 것을 결의 했다.

현대ㆍ기아자동차는 지난해 5월,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과 김서명 기아차 부회장 등이 이끄는 쌍두마차 체제로 전환한 이래 그룹 경영의 커다란 골격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 동안 고속 승진을 거듭해온 정의선 현대ㆍ기아차 총괄본부 부 본부장이 올해 중 사장급으로 승진할 것으로 보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며 “다만 정치 자금 수사에 연류된 정순원 본부장의 입지 변화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지난해 어려움을 겪었던 SK나 현대그룹 등은 재무구조의 획기적인 개선과 선진 지배구조 확립 등을 통해 재기를 천명하고 있어 전문경영인 체제가 빠르게 확립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그룹은 강명구 현대택배 회장을 비롯해 김재수 경영전략팀 사장, 조규옥 현대증권 부회장, 장철순 현대상선 부회장 등 가신그룹을 대거 퇴진시키는 ‘물갈이’로써 ‘세대교체’를 통한 거듭나기를 선언한 셈.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현대증권 등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최근 예년보다 큰 폭의 승진 인사를 실시해 사기 진작을 통한 내부 결속을 다지는 한편 지주 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 상선의 재무 파트를 강화하는 작업에 적극 나섰다. 재계는 이번 인사가 금강고려화학(KCC)과의 경영권 다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CFO(최고 재무담당 경영자)인 한승준 상무를 전무로 승진 발령한 것을 비롯해 영업본부장을 전무급으로 승진시키는 등 총 6명의 임원을 승진시켰다. 2~3명 정도로 이뤄졌던 예년에 비해 승진 폭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현대상선도 현대증권 전략지원본부장인 안홍환 전무를 부사장으로 영입, 관리본부장을 맡겨 재무라인을 강화했다. 현대상선은 이밖에 10명의 임원을 승진 발령했다.

공격적 투자로 재도약에 박자

한편 창립 35주년을 맞은 한진그룹은 심이택 대한항공 사장을 부회장으로, 이종희 부사장을 총괄사장으로 각각 승진 발령하고 전체 임원 63%의 담당 직무를 변경하는 등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대한항공은 직무 담당 임원들에 대한 대폭적인 ‘세대 교체’와 함께 전체 임원수를 108명에서 91명으로 15% 줄이는 임원 구조 조정도 실시했다. 조직 역량 및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팀워크 경영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현행 5개 사업 본부와 3개 운영 본부를 여객, 화물, 운항지원 등 3개 부문 담당 체제로 재편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새해에는 외형 신장 보다는 수익성 제고 등 내실 다지기의 기조를 유지하는 경향이 짙다”며 “새해에는 공격적인 투자로 코드를 맞추고 있어 기업 내부적으로도 ‘세대교체’를 통한 젊고 추진력 넘치는 글로벌 경영체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외의 발목을 잡던 투자의 걸림돌이 상당 부문 해소될 것으로 보이며 해외 경기도 회복되는 추세라는 점 등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 2004-01-09 14:59


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