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사간 무차별 공세, 도 넘은 홍보전에 계약자 '짜증'

번호 이동성 '난장판 삼국지'
이동통신 3사간 무차별 공세, 도 넘은 홍보전에 계약자 '짜증'

‘SK텔레콤 = 안도, KTF = 기대, LG텔레콤 = 우울.’

번호이동성 제도 시행 열흘 가량이 지난 현재, 이동통신 3사의 표정이다. SK텔레콤의 시장 지배력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가운데 2위 사업자인 KTF가 가장 큰 수혜를 입는 방향으로 초반 전세가 흐르고 있는 것. “제도 시행 초기인 1월 중에 승패가 갈릴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판세가 대세로 굳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늘 작은 변수 하나에도 언제든 역전되기 마련. 이통 3사들은 고삐를 늦추지 않은 채 온 전력을 쏟아 부으며 서로를 향해 무차별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이콩 3사가 기존 고객지키기와 빼앗기가 시간이 갈수록 점입가경의 양상을 띠고 있다. /사진 한승진

후끈거리는 전장의 열기

휴대폰 매장이 수백 개 밀집해 있다는 서울 용산전자상가.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의 본사가 번호이동성 전쟁의 헤드쿼터라면 이곳 용산전자상가는 사활을 가늠할 수 있는 일선 전장이다. 이곳의 분위기만 잘 살피면 전세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번호이동성 실시 일주일을 넘긴 1월8일 오후. 전장에는 이미 열기가 후끈하다. 이통 3사의 직영 대리점은 물론이고 3사 제품을 모두 취급하는 2차 판매점들 역시 모처럼 잡은 호기에 한 몫을 챙기려는 듯 호객 행위에 열심이다. 매장 마다 최소 2~3명의 고객이 상담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번호이동성이 이통 시장에 대단한 호재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뜻밖에도 실제 번호 이동 고객을 찾아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기변(기기 변경) 하시려고요?” 매장 직원들의 첫 마디는 열이면 여덟, 아홉 이렇다. 심지어 번호 이동을 하려고 한다는 얘기에 생뚱하다는 듯 머뭇거리는 점원까지 있을 정도다. 설명은 이랬다. “일정 기간 사용을 약정하면 요금 할인 혜택을 주는 약정할인제는 이통 3사가 거의 대동소이 해요. 기변을 하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을 고가에 보상받을 수 있지만 번호이동을 하면 보상이 안 되는 것은 물론 가입비도 별도로 내야 하죠.” 휴대폰을 분실했거나 아예 처음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면 번호 이동의 실익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번호 이동 고객 그 자체보다는 기존 고객을 지키기 위한 이통 3사의 할인 경쟁을 틈 타 휴대폰 단말기를 교체하려는 수요가 호황의 원인인 셈이다. 동원증권이 9일 “가입자 이동이 집중되는 제도 도입 초기인 점을 감안할 때 이동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며 SK텔레콤에 대해 ‘매수’의견을 유지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승패는 돈에서 갈린다

여기서 한 꺼풀을 벗겨내면 장사꾼들의 상술이 깔려 있다. 본사 제품만 판매하는 직영 대리점과 달리 2차 판매점들은 이왕이면 마진이 더 많은 제품을 판매하기 마련이다. KTF나 LG텔레콤 대리점에 번호 이동을 하겠다고 찾아간다면야 허리를 180도 숙이며 “어서 오십쇼” 하겠지만, 판매점들은 사정이 다르다. K매장의 한 직원은 “솔직히 말해 3사 제품을 정확히 비교해 고객들에게 설명해주기 보다는 이윤이 많이 남는 제품을 우선 소개해준다”며 “만약 점원들이 추천을 많이 하는 제품이라면 그 회사가 가장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LG텔레콤 보다는 KTF가, 또 이 보다는 고객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SK텔레콤이 대리점이나 판매점측에 더 많은 판매 수수료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는 SK텔레콤의 기기 보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모델에 따라, 또 새로 구입하려는 기기에 따라 보상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최고 20만원까지 보상이 가능하다. 한 점원은 “50만원 짜리 최신형 단말기도 기기 보상액을 감안하면 30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셈”이라며 “여기에 약정할인까지 받게 되면 월 부담액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통신위가 기기 보상액 최고 한도를 5만원으로 책정해놓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법 보조금 지급이 횡행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는 기기 보상이나 번호 이동 고객들에게 진짜 보조금을 제시하기도 한다. 최근 이통 3사에서 제시하는 수수료가 대폭 높아진 만큼 이 중 일부를 떼서 보조금 형태로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 한 매장 직원은 “계약서에는 일단 50만원을 기재해 놓고 계산을 마친 뒤 추후에 10만~20만원을 통장으로 송금해주는 방식이 보통”이라며 “단속을 피해 보조금을 지급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산전자상가 휴대폰 매장 집결지역. 온갖 선전문구가 나붙은 매장이 혼탁의 극치를 말해주고 있다. /사진 한승진

SKT-LGT 공동전선 구축

8일 현재 SK텔레콤에서 KTF와 LG텔레콤으로 옮겨 간 가입자는 10만799명. 이중 6만171명은 KTF로, 4만628명은 LG텔레콤으로 이동했다. 시행 초기 3~4일은 LG텔레콤이 우위를 보이더니 금세 상황은 역전돼 갈수록 양사의 격차는 벌어지는 양상이다.

제도 시행 이전까지만 해도 가장 으르렁거리며 싸우던 SK텔레콤과 LG텔레콤이 공동 전선을 구축한 것 자체가 흥미롭다. SK텔레콤은 제도가 당초의 취지와 달리 이미 경쟁력을 갖춘 KTF에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등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KTF도 약관인가대상사업자(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할 것을 정보통신부에 건의하겠다고 나섰다. 번호 이동 대상이 KTF까지 넘어가는 7월 이전까지만 선전한다면 성공이라고 판단하는 SK텔레콤이 2위 사업자 KTF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번호이동성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던 LG텔레콤도 거들고 나섰다. “KTF의 가입자 급증은 무선재판매사업(별정이동통신)권을 갖고 있는 KT가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LG텔레콤측의 공세의 골자다. LG텔레콤 관계자는 “KTF의 번호이동 실적의 90% 가량은 KT의 무선재판매 분이라고 보면 된다”며 “특히 이 과정에서 불법 보조금을 20만~30만원씩 지급하는 물량 공세를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사의 공격에 대해 KTF측은 “심증만으로 헐뜯기에 나서고 있다”며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혼탁한 경쟁 끝은 어디?

혼탁한 마케팅 전쟁은 점입가경이다. SK텔레콤은 새해부터 전화를 걸면 통화 대기음에 앞서 ‘SK텔레콤 네트워크’라는 음성이 1~2초간 나오게 하는 인트로 서비스를 도입했다. “통화품질 실명제”라는 SK텔레콤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사전 동의 없이 통화 대기음을 자사의 광고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빗발치자 10일부터 전면 중단했다.

약정할인제를 활용한 과장 광고도 여전하다. KTF 일부 대리점은 ‘011,017 번호는 그대로, 요금의 40%를 할인받아 최신 휴대폰을 무료로’ 등의 스팸메일을 무작위로 고객들에게 발송해 물의를 빚었고, 3사의 대리점이나 판매점들은 앞뒤 설명 없이 ‘최고 40만원 할인’ ‘휴대폰 공짜’ 등의 광고판이 어지럽게 내붙여 놓고 있다. 약정할인이라는 것이 단말기 구입과 관계 없이 일정 기간(18~24개월) 사용을 약정하면 사용 실적에 따라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을 이제는 상당수 소비자들이 인식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이같은 광고에 현혹되기 십상이다. KTF는 무료로 단말기를 이용한 뒤 1년 뒤부터 할부로 단말기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거치 할부제’라는 것을 도입했다가 통신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규 가입 고객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고객을 빼앗고 빼앗기는 제로섬 경쟁은 결국 3사 모두에게 상처만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4-01-16 14:18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