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4년째, 잊혀진 김우중 신화


김우중 대우 회장이 해외로 출국한 것은 대우 사태에 대한 경영진 책임론이 불거지던 1999년 10월. 당시 한 신문 기사는 ‘순진’하게도 이렇게 적고 있다. ‘전경련 회장직에서 사퇴한 김우중 대우 회장이 지난 1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떠나 1~2개 도시를 방문한 뒤 14~15일 쯤 귀국할 것이라고 대우측이 12일 밝혔다.’ 누가 알았으랴. 4년여의 장기 도피의 시작인 줄을. 유럽 출장을 마치고 잠시 귀국한 김 전 회장은 곧바로 계열사 사장단을 이끌고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자동차 부품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자취를 감췄다.

지금까지 4년여간 그는 거처를 수차례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해 홍콩, 알제리, 프랑스, 미국, 베트남, 태국, 이탈리아, 수단, 모로코 등까지. 이 과정에서 그를 직접 봤다는 목격자들도 적잖았다. 2000년 2월 프랑스 니스의 파블롱 인근에 있는 고급 주택에 머물며 인근 쇼핑 센터와 골프장을 들르는 모습이 교민들에게 목격됐고, 베트남 호치민시의 대우호텔에도 여러 차례 머문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사업 재기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또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의 골프장에서 목격됐다는 현지 교포의 제보가 대우차 노조에 접수되기도 했다.

간간이 국내외 언론을 통해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동남아 한 국가에서 도올 김용옥씨를 만나 “ 대우는 죽었어도 대우의 정신은 살아야 한다”고 강변했고, 다음해 1월에는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 “ 김대중 대통령이 잠시 (외국에) 나가 있으라고 말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도피 이후 지금까지, 내내 지병에 시달려 온 것으로 전해진다. 장 협착증과 심장 질환 등으로 미국 등을 오가며 치료와 요양을 병행하고 있는 상태. 김 전 회장의 측근인 백기승 전 대우 상무는 “ 현재 프랑크푸르트에 머물고 있지만 건강이 여전히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 조만간 큰 치료를 받을 것이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02년 말 한 때 그의 귀국설이 근거 있게 나돌았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그가 귀국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핵폭풍에 대한 부담 때문에 여야 정치권 모두 그의 귀국을 달가워하지는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4년여의 기간은‘ 김우중 신화’에 다시 불을 지피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4-01-16 14:40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