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환경 개선으로 '알짜기업' 변신, 빙그레 군침 속 매각·재상장 갈림길에

살 오른 해태제과, 누가 먹나
경영환경 개선으로 '알짜기업' 변신, 빙그레 군침 속 매각·재상장 갈림길에

“정(정수용 빙그레 사장) 선배,그럴 수 있습니까. 해태제과를 인수할 의사가 있고 현재 이를 추진 중에 있다고 기자들에게 발표까지 했으면서 정작 당사자인 우리(해태제과)와는 접촉 한 번 없고…” “정말 인수할 생각이 있다면 정식으로 우리에게 오퍼를 내십시오. 밖에서만 떠들면, 현업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우리 영업 사원들은 얼마나 혼란스럽고 사기가 꺾이는지 알고 계십니까. 한 마디로 영업 방해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해태제과의 차석용 사장은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빙그레 정수용 사장의 답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상기된 표정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다.경기고 선후배로 제과업계에서는 ‘호형호제’하며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의 관계에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개월여가 지난 지금, 해태제과의 매각 문제를 둘러싼 신경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오는 6월까지 매각 시한을 못박은 해태제과와 이미 거래소 기업공시 등을 통해 잇따라 인수의지를 표명한 빙그레 간의 신경전은 이미 항의공문까지 서로 오가는 등 첨예한 ‘기 싸움’으로 번진 상태다.

△ 해태제과 누구의 손으로

‘해태제과 매각설’이 처음 흘러나온 것은 UBS컨소시엄(CVC 아시아퍼시픽 캐피털과 JP모건 파트너스 아시아, UBS 캐피털 등)에 매각된 지 2년째가 되던 지난해 여름 무렵. 외국계 투자사들이 장악한 해태제과는 회사가 정상화되고 경영실적이 개선되면 언제든지 높은 가격에 매물로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당시 해태제과는 새 출범한 지 두번째 회계 연도인 2003년에 큰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됐다.(결과적으로 연 매출 6,128억원, 영업이익 554억원을 올려 전년대비 각각 7%, 30% 성장했다) 5년간 법정관리 체제에 묶여있던 기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깜작 변신’이었다.

UBS컨소시엄은 모건스텐리증권 홍콩지사를 주간사로, 동양제과 등 국내 업체들에게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결과는 결렬. 가격 차가 문제였다. 국내 최대 제과업체인 롯데는 해태를 인수할 경우 독과점 규제에 걸려 의사타진조차 불가능했다. UBS컨소시엄이 국내 업체에 제시한 매각 대금은 최저 7,000억원대. 컨소시엄은 2001년 4,800억원을 투자했으니 3년도 채 안돼 무려 40%의 수익률을 올리는 셈이었다

해태제과의 인수에 적극적으로 구애의 손짓을 보낸 곳은 빙그레였다. 빙그레는 지난해 8월 언론을 통해 해태에 대한 인수의사를 공개적으로 흘린 뒤 기업공시를 통해 ‘인수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빙그레는 이후 ‘해태 인수가능 유력업체’라는 꼬리가 붙었고 지난해 라면사업 정리 등 구조조정의 성과까지 겹치면서 주가가 지난해 초 1만원에서 최근 2만원대로 치솟았다.

빙그레가 해태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새로운 성장 동력의 확보다. 최대 수익원인 빙과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빙그레의 주력매출은 유음료(52%)와 빙과류(48%) 인데, 지난해 5,070억원 대에 그쳤던 매출 규모를 2005년까지 1조원 대로 끌어올리려면 외형확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해태제과의 빙과부문을 인수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빙그레측은 기대하고 있다.

현재 국내 빙과시장의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롯데제과가 37%로 선두를 지키고 있고, 빙그레가 26%, 해태가 24%로 2위군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빙그레가 해태제과를 인수할 경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절대강자 롯데(롯데제과+롯데삼강)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문제는 빙그레의 자금력이다. 증권ㆍ제과업계의 대체적 반응은 “빙그레 혼자의 힘으로는 인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지난해 5,006억원의 매출 규모에 38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빙그레가 꾸준히 구조조정 작업을 펼쳐왔지만 7,000억원대의 인수자금을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인수자금?마련을 위해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사재를 출현하고 은행차입금까지 더한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국내외 투자은행과 컨소시엄을 이루거나 해태제과의 건과부문에 관심이 많은 크라운제과 등과 공동으로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시나리오도 제기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다. 해태제과의 제조라인이 산재한 전국 7 군데,8개 공장중 절반 이상이 아이스크림과 건과제품 생산 라인이 함께 설비돼 있어 이를 분리매각하기는 불가능하다.

빙그레는 지난 6일 증시 기업공시를 통해 “해태제과 인수를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며 장기전에 들어가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빙그레의 한 고위관계자는 “해태제과측의 매각 희망가는 시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현실성 없는 가격대로, 과연 그 금액을 지불하고 인수할 국내업체가 삼성전자 외에 누가 있겠느냐”며 기다릴 뜻을 분명히 했다. 빙그레는 앞으로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관망세를 유지하며 마감 시한인 6월 전까지 조심스럽게 협상 시점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 해태 매각이냐 재상장이냐 두고 고심

현재로선 UBS컨소시엄이 해외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국내에선 해태를 인수할 만한 기업을 찾기 힘들고, 6월 이전까지 매각 협상의 결론을 내리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UBS컨소시엄의 입장에선 지난 3년간 바짝 경영개선을 이룬 현시점에서 매각하는 것이 몫돈을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 해태제과는 당장 올해부터 새로운 중장기 투자가 이뤄져야 할 시점인 데다 투자펀드의 속성상 지나치게 한 곳에 발을 오랫동안 담가놓을 경우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터다.

하지만 해외시장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한때 해태제과에 눈독을 들여온 세계적인 식품업체 네슬레와 나비스코 등도 최근 생산 가동률을 낮추고 구조조정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마당이어서 한국에 투자기회를 엿볼 여력이 없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석이다.

마지막 남은 선택은 해태제과가 3년 연속 흑자를 기록, 6월 결산공고 이후 재상장 자격을 갖춰 거래소에 재상장하는 것이다. 해태제과의 매각작업이 표류할 경우 재상장이라는 카드로, 더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모든 것은 빙그레가 해태인수를 포기할지 여부에 달렸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4-02-17 16:05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