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표대결서 소버린 누르고 최태원 회장 경영권 방어임기 끝나는 내년 주총이 경영권 굳힐 최대 승부처투명성 높일 지배구조 개선작업 가속화 전망

SK완승, 그러나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
주총 표대결서 소버린 누르고 최태원 회장 경영권 방어
임기 끝나는 내년 주총이 경영권 굳힐 최대 승부처
투명성 높일 지배구조 개선작업 가속화 전망


“주주로서 긴급제안을 하겠습니다. 최태원 SK㈜ 회장이 주주총회 자리에 직접 나와 분식회계와 비자금 부분에 대해 주주들에게 사과할 건 사과하고 …. 최 회장이 해외 IR 등에는 본인이 직접 나서겠다면서 정작 주총 자리에는 얼굴도 내보이지 않는 것은 국내 주주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내년 주총에는 최 회장을 꼭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던 3월12일, 제42회 SK㈜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 컨벤션 센터에는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반란의 기운’을 경계한 듯 긴장감이 감돌았다. 적어도 시작은 그랬다. 그러나 팽팽한 접전 속에 간발의 차이로 앞설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주총의 핵심 쟁점이던 이사 선임 투표 과정에서 SK쪽으로 표심이 몰리면서 최 회장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소버린의 반란은 찻잔 속의 소용돌이로 그쳤다.

예년과 달리 이번 주총에 동원된 회사 관계자들이 ‘물 반, 고기 반’을 넘어 기관 투자자들이나 개인 주주들보다 더 자리를 가득 메웠고 진행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경호원들까지 30여명 배치됐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주총은 주요 안건을 놓고 12차례나 표결이 이뤄지면서 무려 7시간이나 계속됐다. SK의 현 경영진측이 압도적인 표차로 2대 주주인 소버린 자산운용을 물리치면서 지난 1년간 벌어진 경영권 다툼은 종지부를 찍었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여파로 주식시장은 이날 크게 출렁거렸지만 SK㈜ 주가는 오히려 반등세를 보였다. SK㈜ 주식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관리(?)에 들어간 듯, 전일대비 1.71% 오른 3만8,750원으로 마감됐다. 증시 전문가들은 주총 결과에 따라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펀더멘털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를 밀어올린 것으로 분석했다.

- 향후 1년동안의 경영성과가 최대 관건

하지만 SK그룹측은 승리의 기쁨보다는 앞으로의 부담에 손끝이 시릴 정도다. 야구로 치면 SK가 8회 말에 3명의 타자를 보기 좋게 삼진아웃 시켰다는 기쁨에 들떠있기에는 남은 마지막 회에 대한 부담이 오히려 더욱 크게 느껴진다. 마지막 회에 들어설 외국 용병(자본)에 대한 부담은 더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SK㈜의 외국인 지분율은 55.13%. 언제라도 소버린이나 웰링턴, 템플턴 같은 외국인 대주주들에 의한 경영권 침탈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주요 외국인 주주의 하나인 웰링턴 자산운용은 공교롭게도 주총이 열린 12일 SK㈜ 지분을 1.10% 증가한 9.07%로 공시했다. 표 대결에서 패한 소버린측도 “오늘의 패배와 상관없이 주주에게 보장된 권리를 활용해 주주와 한국경제를 위해 SK㈜의 개혁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기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소버린은 최 회장 퇴진 등과 관련한 기존의 주장을 철회할 뜻이 없다고 했다.

최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다음 주총까지 남은 기간은 앞으로 1년. 이 기간에 SK가 지배구조 개선안을 어떻게 현실화하고 올해보다 나은 경영성과를 거둘 것인지가 마지막 관건이다. 최 회장의 SK 경영권 방어 가능성을 가늠 짓는 결정구이기도 하다.

재계로서는 ‘소버린 효과’에 대한 일부의 긍정적인 평가도 무시할 수 없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한국 정부가 몇 년을 걸려서도 못해낸 일을 소버린이 단 1년 만에 해냈다”며 “올해 주총에서는 SK가 이기겠지만 최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주총이야말로 메인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역시 “그 동안 과정을 보면 소버린에게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소버린이 SK의 지배구조개선을 앞당긴 것은 사실”이라는 평가했다. 세종증권 유영국 연구원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외국인 지분율이 계속 높아진다면 최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주총에는 외국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이 더욱 가시화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최 회장의 SK경영권 방어가 이날 결과로 승패가 갈렸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최 회장으로서는 임기가 끝나는 내년 주총이야 말로 장기적으로 경영권 안정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배팅할 9회 말 승부처가 된다.

최 회장은 최근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SK를 앞으로 제너럴일렉트릭(GE) 수준의 선진적인 지배구조로 개선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따라서 이번 주총에서 얻은 명분을 바탕으로 SK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안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최 회장, 전문경영인과 파트너십 체제 구축할 듯

SK그룹은 15일 신헌철 SK가스 부사장을 SK㈜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대규모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SK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는 최 회장과 신 신임 사장 등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된다. SK텔레콤도 조정남 대표이사 부회장과 김신배 대표이사 사장 체제로 재편돼 ‘전문경영인과 오너의 파트너십’이란 지배구조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SK그룹은 브랜드와 기업문화는 공유하면서 새로운 경영진과 사외이사 등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중심으로 적어도 외형상 계열사별 독립경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도 최근 “과거 한 사람이 결정하던 권한을 이사회로 넘기는 것이 내 임무”라고 말해 이사회 권한을 강화할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그룹 체제를 계열사별 독립경영 시스템으로 바꾸고, 이사회의 능력을 배양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도 사회에서는 외부의 누군가를 영입하면 모두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이런 작업은)하루 아침에 이뤄지기 힘들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 오너로서 그룹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현재 최 회장은SK텔레콤 이사 직에서 물러난 상태이지만 SK㈜가 SK텔레콤의 최대 주주인 만큼 이를 근거로 그룹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룹을 이끌 대표주자들이 결정된 만큼 새 이사회가 주축이 된 지배구조개선 및 구조조정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SK는 자산 매각 및 계열사 통폐합을 통해 건전한 재무구조를 갖추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내부적으로는 이미 돌입한 상태다. SK증권 등 금융계열사와 소규모 벤처회사 등을 매각하거나 통폐합해 59개인 계열사를 2007년까지 30여 개 수준으로 줄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SK텔레콤 등 정보통신분야, SK㈜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ㆍ화학 분야, 유통 전문 회사인 SK네트웍스 등 3개 핵심사업에 주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 회장의 9회 말 승부는 주총이 끝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된 셈이다. 과연 그가 이번 주총에서 일부 주주들이 요청한 것처럼, 내년 SK㈜주총 현장에 자신감 있게 직접 모습을 보일 수 있을 지가 관심사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4-03-17 20:18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