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미래성장엔진으로 '은행설립 본격화'분석외국자본 대항마로 금융계 국내자본 참여론도 힘 실어줘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 내정, 삼성 은행소유 시나리오?
그룹 미래성장엔진으로 '은행설립 본격화'분석
외국자본 대항마로 금융계 국내자본 참여론도 힘 실어줘


정말 실현될 수 있을지 궁금한 만큼, 그리고 이목이 쏠리는 만큼, 이보다 상황 진단이 어려운 일도 드물 것이다.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이 우리금융회장 후보로 유력해졌을 때부터 삼성의 은행 소유 프로그램이 본 궤도에 올랐다는 섣부른(?) 단정이 고개를 디밀었다.

삼성그룹 한 임원은 황 내정자가 공식 활동에 나선 뒤 기자의 문의에 “전적으로 황 전사장의 개인 행동일 뿐이라는 게 정설”이라며 “우리금융 민영화 참여 이야기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뭇 금융인들과 재벌 문제에 관심 많은 대중들의 시선을 돌려 세울 순 없다. 시중은행 한 부행장의 말대로 ‘하필 삼성 출신이라서 수상한’ 데다 “지난해 4분기 이후의 정세 변화가 결국은 이런 상태를 예비한 것 아니냐”는 금융산업노조 관계자의 반문 역시 예사소리는 아니다.

- 앞으로를 위한 포석?

‘삼성그룹이 은행 소유를 원한다’ 또는 ‘스스로를 위해서도 은행 경영권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삼성 밖의 시각은 갈수록 짙어지는 분위기다.

재벌계열 증권사 한 임원은 “이건희 삼성회장이 10년 후에도 먹고 살 것을 찾으라고 수 없이 강조했다면 금융부문만큼 삼성그룹의 미래성장엔진으로 적합한 게 없다는 판단은 당연히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계 안팎을 둘러보면 방카슈랑스를 비롯해 금융업권간 장벽을 허물려는 금융정책의 큰 줄기는 확고하다. 이 때 은행이 자연스레 새 판도를 주도하게 되는데 삼성이 ‘될 성 부른 떡잎’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금융업의 가장 기초가 되는 은행을 갖지 않고 보험업계와 증권업계 1등을 유지하는 영화를 삼성그룹이 계속 누린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선물사를 증권에 넘기는 대신 투신운용을 증권사로부터 넘겨 받았던 지분 맞교환과 △삼성카드 추가 출자에 보험계열사를 앞세우려 했던 점 등 지난해 하반기 이후의 움직임은 삼성생명을 축으로 금융계열사를 재편하려는 삼성그룹의 포석일 것이라는 해석도 낯설지 않다. 게다가 현 우리금융 윤병철 회장은 삼성그룹이 지분 3%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3%라는 수치는 아주 적지만 이를 발판으로 삼고 막강한 자본력을 지렛대로 삼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예상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 뜻을 펼 여건도 무르익었다

아울러 지난해 4분기 들면서 여건도 무르익었다. 지난해 11월28일 금융연구원은 금감원 기자단 세미나에서 “외국자본 국내 진출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금융기관을 민영화할 때 연·기금을 활용하거나 특별펀드를 허용해서 국내자본이 소유하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금융계 일각에선 “정부가 가려워 하는 곳을 금융연구원이 시원하게 긁어준 셈”이라는 해석도 돌았다. 그 때부터 외국자본 지배력이 더 늘어나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정부와 금융계 안팎에서 부쩍 치솟았고 외국 자본의 ‘대항마’로서 국내자본 참여론이 힘을 얻었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긴 뒤 어느날, 금융정책 당국 한 관계자는 “대형은행만큼은 외국자본에 넘기면 안 된다는 입장이 정부 안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큰 은행들을 외국 자본에 속절 없이 넘긴다는 것은 금융시장과 산업정책을 포기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데 정색을 하고 의견을 구해보면 긍정적 의견과 안 된다는 입장이 팽팽한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전경련 고위관계자는 “산업자본을 뺀다면 국제적 메이저 플레이어와 능히 맞설 대형 금융기관을 영위할 국내 자본은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국내 자금을 긁어 모아 사모펀드를 만든다 하더라도 연·기금이나 국내 기관투자가들부터 제 역할을 못하는 실정인데 실효가 있을 리 없다”고 단정했다. 산업자본이란 결국 재벌의 돈을 뜻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말이 아니더라도 재계의 논리는 한결같다. 국내 산업자본을 역차별 하는 바람에 돈 벌 기회를 봉쇄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줄기차게 따지고 있다. 반면에 시민단체와 금융인들의 정서 밑바닥에는 이른바 ‘재벌’에 대한 거부감이 광범위하고 뿌리 깊다.

한 시중은행장은 “금융외환 위기까지 겪은 마당에 반 재벌 정서를 걷어내기란 거의 불가능 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서는 한국금융신문 창간 12주년 기념 은행원 설문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인수에 부정적 견해는 45%였고 중립적 견해가 39%였다. 산업자본의 은행인수에 대해선 외국자본에 대한 거부감보다 소폭 낮은 39%였고 중립이 40%였다.

이런 찬반 대립구도와 관련해 은행업종을 담당하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논리나 이성적 토론으로 산업자본 참여문제를 가름할 시기는 진작에 지났다”며 “우리금융그룹 정도의 거대 금융기관을 인수할 적격성이 인정될 만큼의 금융전업 자본가를 육성하는데 시간도 걸리고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산업자본을 적절한 통제와 감시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결단이 필요한 때”이라고 주장했다.

- 경영권 장악,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삼성그룹이 우리금융그룹 경영권을 손에 넣으려면 직접은 절대 안되고 금융계열사를 떼어내는(계열 분리) 일을 2년 안에 끝내야 한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 8조~8조 3항의 문턱 때문이다. 산업자본 또는 재벌을 뜻하는 비금융주력사는 금융지주회사 지분을 4%밖에 소유할 수 없다. 부득이 늘린다면 10%까지 금감위 승인을 거쳐 가질 수 있지만 의결권은 4%뿐이다. 금융주력사로 전환(계열 분리)하겠다는 완벽한 계획을 금감위에 제출해 승인을 거쳐 10% 이상 지분 인수를 추진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주력사 전환 계획이 제대로 지켜지고 매 분기 점검을 하게 된다”며 “승인을 따기도 어렵겠지만 재벌 사금고화 우려 때문에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한 관계자는 “삼성가의 지분관계가 복잡한 반면 우리금융 민영화는 마냥 미룰 시간이 없어 성립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한국금융신문 정희윤 기자


입력시간 : 2004-03-17 20:25


한국금융신문 정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