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총선경기, 서민경제 갈수록 추락물가 뜀박질 계속, 총선·탄핵심판 이후에 촉각

'춘래불사춘'경제 "선거 끝나면 훈풍 불라나"
얼어붙은 총선경기, 서민경제 갈수록 추락
물가 뜀박질 계속, 총선·탄핵심판 이후에 촉각


총선 경기가 얼어 붙었다.

4ㆍ15 총선을 앞두고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보다 총선 이후의 우려가 더 앞서고 있다. 물가는 4개월째 뜀박질을 거듭하고, 신용불량자는 380만 명을 돌파하는 등 불황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고 소비심리 위축은 심화되고 있다. 경기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여야 후보 가릴 것 없이 ‘경제 살리기’ 구호를 내세우며 재래시장과 상가 등을 돌지만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실종된 경기를 살릴 눈에 띄는 경제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 선거특수는 옛말, 전국이 썰렁

선거 철마다 반짝 특수를 누렸던 ‘선거 수혜업종’마저 올해는 썰렁하기만 하다. 수도권과 지방을 중심으로 선거철이면 북적이던 관광ㆍ음식점 업계들도 모두 울상이다. 전남 광주권을 중심으로 전세버스 사업을 하는 금호고속은 3,4월 성수기를 맞아 선거철인데도 가동률이 예년보다 30%이상 줄어들었다. 회사 관계자는 “선거 감시를 의식해서인지, 선거특수는 커녕 친목단체 모임조차 줄어들었다”며 “그나마 총선이후 예정된 수학여행용 버스 임대가 현재로서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총선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손꼽는 눈치다.

버스 20여대를 굴리는 이 회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불황에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윤달마저 끼어 결혼식까지 급감하자 영세 전세버스 업자들은 아예 핸들을 놓은 지 오래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3,4월은 계절적으로 성수기인 데다 선거까지 겹치면 버스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였는데, 올해는 거꾸로 버스 가동률이 70%이상 줄어들었다”며 “일반 모임이나 친목단체의 개별 예약도 선거 눈치를 보고 있어 씨가 말랐을 정도”라고 한숨을 내쉰다.

음식점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도봉산자락 부근에서 단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56)모씨는 “선거 경기는 말할 것도 없고 총선이 오히려 영업 방해 요인”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출마자나 유권자는 물론, 단속하는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조차도 음식점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괜한 오해를 살까 봐 정기적으로 찾아오던 구청 직원 등 공무원들 조차 발길을 끊었다. 그래서 업소 매출은 지난해 보다 40% 줄었다.

인쇄 업소들이 몰려 있는 서울 종로3가 인쇄거리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 경기위축으로 광고물, 소위 ‘찌라시’는 말할 것도 없고 선거유인물 주문조차 급감, 평소보다 매출이 절반이상 줄어들었다. 수안보와 온양 등 지방의 대형 온천장이나 대형 숙박 업소등에도 선거특수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정작 걱정되는 것은 총선ㆍ탄핵 이후의 경기 입니다.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가 나와도 더 이상 믿지 않는 분위기예요. 경기 지표와 체감온도의 괴리감이 너무 커 경제전망치를 내놓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특소세 감면 효과도 미미한 수준이고요.”(전국경제연합회 K모 상무)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단체들은 2ㆍ4분기 이후가 경기의 ‘턴 어라운드’ 시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고 있지만 소비 위축과 기업투자 부진 등으로 경기회복 시기를 솔직히 점치기 어렵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금융시장 불안의 우려와 얼어붙은 기업 마인드, 악화된 소비 심리, 대외 신인도 하락에 대한 우려, 뒷걸음치는 일자리 창출 등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면 심리적 안정이 우선돼야 하는데 총선ㆍ탄핵 이후를 생각하면 먼저 우려감이 앞선다고 입을 모은다.

- 불확실성으로 경제불안감 가중

기업들은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대체로 탄핵을 기각할 가능성을 상정해 놓고 대통령이 복귀하면 경제 정책을 어떤 기조로 갖고 갈 지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이 가장 꺼리는 것은 역시 불확실성”이라며 “좌든, 우든 방향만 확실히 잡는다면 대책을 강구하고 전략을 짤 수 있지만 황사현상처럼 앞뒤 구분이 어려운 현상황이 불안감을 가중시킨다”고 말했다. 탄핵정국 이후 여론 추이가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지로 돌아서면서 그 인기를 등에 업고 대통령이 컴백할 경우 혹시 ‘질풍노도’와 같은 어떤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지 모른다는 불안 심리가 깔려 있다. 또 이번 총선 출마자 상당수가 이름도 듣지도 못한 정치 신인들로 구성돼 있어 이들이 향후 어떤 성향을 보일 지에 대한 우졀㉤?떨칠 수 없는 분위기다.

경제 내부 환경이 썩 좋지 않은 것도 총선 이후에 대한 우려감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연초부터 우리 경제의 발목을 죄고 있는 원자재 난과 고유가 문제 등은 풀릴 기미가 없어 보인다. 여기에다 기업들로서는 5,6월로 예고된 임단협에 이번 선거가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노사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5일제와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개별 기업차원에선 해결하기 어려운 현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D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 현실화되고 열린우리당과 손 잡고 노동계 요구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난해처럼 정부의 방침이 ‘친노 정책’으로 기운다면 기업, 노조, 한국경제의 공멸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잃을 것 없다” 낙관적 전망도

물론 총선이후 경제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탄핵여파 등으로 유발된 경기 악재는 이미 시장에 반영될 대로 반영된 상태로 더 이상 잃을 것도, 지표가 떨어질 것도 없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계속돼온 정치권의 분쟁이 종식되고 새 인물로 국회가 물갈이 될 경우 총선결과가 ‘코리안 디스카운트’ 요인을 제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홍성국 대우증권 투자정보부장은 “총선은 정치적 혼란과 불확실성을 한 방에 해소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며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국정운영 측면에서 시장 친화적인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은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상조 참여연대 개혁센터 소장은 “총선 자체가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지만 노사문제에 대한 불안감은 해소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2003년 참여정부 출범 때와 비교해 그 어느 때보다 여당과 정부, 청와대가 친 시장주의 경제팀으로 구성돼 국정 운영의 기조가 기업들에게는 예측 가능한 유리한 입장”이라고 관측했다. 김 소장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미 총선 ‘올인’ 과정을 통해 출범 초기의 개혁적 정체성을 상실하고 한나라당과 차별 없는 보수화의 길을 택했다”며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총선이후 갑작스럽게 ‘U턴’해 정권출범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이지 않아 총선후 재계로서는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4-04-06 22:01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