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전운', 국민·하나·우리 등 국내은행 경쟁력 키우며 일전불사 의지

씨티은행 국내진출… 맹수와 검투사 '금융대전'
금융권에 '전운', 국민·하나·우리 등 국내은행 경쟁력 키우며 일전불사 의지

서기 180년, 로마. 10만 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콜롯세움에 긴장감이 감돈다.

냉혹한 원형 경기장 한 가운데 짧은 단검과 작은 방패 하나만을 든 ‘글래디에이터(검투사)’.사나운 맹수의 포효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검투사의 표정엔 죽기 아니면 살기의 결연함이 배어있다. 광적으로 환호하는 관중. 그들은 피를 원하고, 마지막 승자에 열광한다. 팔다리를 쇠사슬에 묶인 채 맹수 앞에 내 던져지는 검투사. 사소한 실수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 로마 황제에 의해 잘 조련 된 맹수는 무기조차 변변치 않은 검투사를 금방 잡아 먹을 듯 사납게 덮친다.

검투사는 맹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순간 순간, 허를 찔러 맹수의 심장을 노린다. 사활을 건 한판 승부를 목전에 두고 있는 21세기의 한국 금융계는 다름 아니라 출전을 코앞에 둔 검투사들, 바로 그것이다.

‘씨티은행’은 그들에게 맹수임에 틀림없다. 씨티가 한국의 리딩 뱅크로 탈바꿈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보면 거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막강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국내 자산가들의 외국 은행 선호 경향 등을 고려한다면 국내 은행들에겐 하루하루가 역부족을 절감하는 나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국민·하나, 전략적 제휴 등으로 의지 다져

최근 씨티의 한미은행 공개매수가 초읽기에 들어 가면서 ‘금융 대전(大戰)’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격전을 앞둔 국내 은행들은 ‘단검과 방패’를 정비하고 사활을 건 일전을 위해 결연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국내 주도적 뱅크의 수장으로 씨티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김정태 국민은행장. 그는 이미 비상 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김 행장은 4월 1일 월례조회에서 “씨티은행이 들어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물론, 씨티은행과 1대 1 수준에서 싸울 수 있는 제휴 파트너를 세계를 뒤져서라도 찾아 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미 은행의 복합화를 위해 이미 한투ㆍ대투 인수 의사를 밝히고, 증권과 투신업에로의 영역 확장을 선언해 놓은 상태다.

장사꾼의 기질도 변함이 없다. “돈이 된다면 똥장군도 져야 한다”며 직원들의 분발을 촉구해온 그는 최근 문제가 된 모바일 뱅킹 단말기 판매와 관련, “은행원들이 단말기를 판다고 잡상인은 아니다”라고 ‘장사꾼 논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또 철저한 서비스 전쟁을 펼쳐야 하는 창구 수납 서비스와 관련, 자신의 부인을 창구에 보내 테스트한 사례까지 거론하며 직원들을 독려하고 했다. 큰 그림에서 사사로운 전술까지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고 행사하는 적극성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이미 씨티와의 기싸움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욕으로 충만하다.

필요한 말 외에 튀는 행동을 극히 자제해 온 김승유 하나은행장도 이번만은 위기의식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김 행장은 최근 2ㆍ4분기 조회에서 “씨티그룹의 진출에 대비해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과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고 프라이빗 뱅킹 사업본부를 이 달 안으로 신설하겠다”며 “효율적인 종합금융서비스 체계 구축을 위해 장기적으로 지주회사로 전환을 검토 중”이라고 대응 전략을 강조했다. 두 김 행장이 ‘맹수(씨티은행)’와의 일전을 앞두고 해외 파트너와의 제휴 모색을, 그것도 같은 시점에 언급한 것은 그들의 팔다리를 묶고 있던 ‘쇠사슬’이 조만간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ㆍ하나 두 은행 모두 지분매각을 목전에 둔 상태. 국민은행은 7월 이후 자사주 8.15%를 매각할 예정이고 하나은행도 예보 보유지분 21.6%의 조기매각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지분 매각을 통한 제휴라는 밑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외부의 피’를 수혈해 선진 금융기법 등을 전수 받고, 외국 자본의 침식에 대항한다는 상징성까지 내세운다면 씨티와의 일전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 우리, 은행 복합화로 재무장

최근 취임한 우리금융지주회사 황영기 회장의 각오도 남다르다. 진짜 검투사를 연상시키듯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비장함이 묻어난다. 3월 25일 취임 일성으로 그는 “최고 경영자는 ‘검투사’라는 신념으로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며 “지면 죽는 만큼, 승부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며 어떻게 해??이길 수 있도록 고민하고 그 방법을 찾겠다다는 신념으로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황 회장은 또 ‘은행 복합화’를 화두로 3차 은행대전을 선포했다. 은행 복합화란, 증권ㆍ투신ㆍ보험 등 비(非)은행 부문 인수를 통해 금융기관 영역을 통합한다는 것. 황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은 생존을 위한 1차 대전(1998~99년)과 대형화를 위한 2차 대전(2000~2003년)을 지나, 이제는 복합화를 위한 3차 대전 시대를 맞이했다” 며 “한 발 늦게 출발하지만, 이후의 질적 효율화(4차 대전)도 성공적으로 추진해 우리은행을 금융권의 절대강자로 키워 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황 회장은 복합화를 위해 한투ㆍ대투ㆍLG투자증권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이미 유사한 전략에 나서고 있는 국민과 하나은행 등과의 정면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삼성맨’ 출신다운 강한 의욕을 불사르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가에는 “이미 실무팀이 가동중이고 밑그림까지 그려졌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을 정도다. 따라서 5월중 인수의향서 접수로 본격 개시될 한투ㆍ대투 인수전은 국민은행과 우리금융의 2파전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금융계의 시각이다. 또 최근 인수 의향서를 접수한 LG투자증권의 인수전 역시 우리금융과 미래에셋증권의 2파전으로 압축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물론 외국계 자본의 참여도 변수로 남아있다. 아직까지 윤곽을 드러내진 않고 있지만 씨티은행과 뉴브리지캐피털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어 결과를 예단하기는 아직 어려운 상태다.

- 신한, 조직정비 서둘러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신한은행도 금융권에 감돌고 있는 위기감을 좌시하지 않는 분위기다. 언론에 언급되기조차 꺼려 하는 보수성향이 강한 정통 뱅커인 신상훈 신한은행장. 신 행장은 최근 조회에서 “외국 자본의 진출 러시로 금융권이 또 한 번 지각변동을 겪게 될 것” 이라며 “경쟁 은행들도 시장주도권 확보를 위해 조직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목표하는 경영성과 달성을 위해 차별화 된 전략과 응집된 추진력이 요구된다”고 긴장감을 고취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씨티 대응책으로 자산건전성 강화 등 자체 경쟁력 제고라는 원론적 방안만을 강조할 뿐, 3차 대전인 은행 복합화에서는 다소 한 발 물러서 있는 상태다. 이미 몸집을 업계 2위(자산규모)로 불린데다 증권ㆍ투신 등 나름의 균형을 갖추고 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 인수ㆍ합병 등의 전략을 남들처럼 구태여 드러내 놓고 얘기할 필요는 없다는 보수적 입장을 지향하는 나름의 이유다.

맹수와 검투사의 한 판 승부는 이미 시작됐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 2004-04-06 22:04


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