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 최악의 내수부진으로 체감경기 바닥정치권 "경제에 올인" 불구 끝 안보이는 불황터널

'삼겹살에 소주 한잔' 조차 가볍지 않은 서민경제
치솟는 물가, 최악의 내수부진으로 체감경기 바닥
정치권 "경제에 올인" 불구 끝 안보이는 불황터널


“아줌마, 감자탕에 감자가 두 톨 밖에 없잖아요.”

총선이 끝난 요즘, 감자탕에 소주나 곁들이려는 주당들은 십여 년 단골집이라도 시중에서 파는 감자탕에 감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 섞인 푸념을 늘어 놓기 일수다. 감자 값이 예년에 비해 40%가량 올라 20kg 기준 상자 당 4만원 대(햇감자의 경우 5만8,000만원)로 껑충 뛰면서 감자탕의 주인공 감자가 실종(?)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뿐인가, 가정에서나 아이들의 단골 도시락 반찬이던 볶은 감자 찾아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되는 등 고공행진 가격대의 감자가 ‘금(金)자’로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다.

서민들의 단골 식단인 돼지고기 삼겹살은 또 어떤가.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에 따르면 돼지고기는 100g기준으로 삼겹살은 1,430원에 목살은 1,240원으로, 평소보다 각각 20~30%정도 올라 꾸준하게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식당에서 시켜먹는 삼겹살 1인분에서 고기의 숫자나 굵기가 부지불식간에, 그만큼 줄어 들고 있는 셈이다. 노릇 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마늘 한쪽 된장에 푹 찍어 서너 번 먹다 보면 어느새 상추나 마늘이 바닥나고 만다. 상차림에 나오는 기본 수량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 공공요금 줄줄이 인상 대기

식당 주인 아줌마에게 상추와 마늘 등 야채를 더 달라고 보채기가 무섭게 째려보는 주인장의 야박한 태도에서 이들 가격이 얼마나 높이 올랐는지가 피부로 실감된다. 깐 마늘의 경우 kg당 5,000원으로 예년보다 1,493원 정도, 상추는 4kg 상자 당 4,750원으로 500원 정도가 각각 오른 상태다. 고객의 ‘더 달라’는 요구에 주인장의 눈꼬리가 올라가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을 노릇이다.

여기다가 ‘서민의 술’인 소주 세율을 연내 올리겠다는 방침을 최근 정부가 발표하면서, 그러잖아도 모퉁이에 서 있는 서민 경제가 한층 휘청거리고 있다. 일단 주세가 인상되면 소주값은 오르기 마련. 재정경제부는 현행 72%인 소주 세율을 연내 90~100%로 연내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현재 소주의 공장 출고 가격은 740원. 1999년까지만 해도 세율이 35%로 출고가격은 510원이었다. 하지만 현행 세율을 90%로 올릴 경우 주세는 300원, 100%로 인상하면 347원이 각각 된다. 공장 출고 가격 역시 832원(90%), 884원(100%)으로 인상된다. 지금껏 소매점에서 1,000원, 일반 술집에서 3,000원 정도에 마실 수 있던 ‘쐐주’가 소매점은 1,100∼1,200원, 술집은 4,000원까지 각각 오르게 된다. 이제 ‘소주 인심’도 옛말. 낱개 잔으로 마시는 ‘나또 시대’가 도래할 조짐이다.

담뱃값도 올 하반기 가격 인상을 앞 두고 있어 서민 애연가들의 쓰린 가슴을 벌써부터 불안하게 만든다. 최근 한 설문 조사에서 담뱃값을 5,000원으로 올리면 100명 중 절반 이상인 56명이 담배를 끊겠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인상의 여파로, 타의에 의해 금연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벼랑으로 내몰리는 셈이다. 복지부는 올 하반기에 담뱃값을 500원 올린 뒤 매년 500원씩 추가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답답한 심정에 승용차라도 몰고 봄날 따스한 햇살 맞으며 드라이브에 나서야 겠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휘발유가 충분한 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최근 국제 유가의 잇따른 상승 여파로 정유 회사들이 일제히 석유 제품 가격을 또 한 차례 인상했으니, ‘ 오르는 기세는 결코(?) 꺾일 줄 모른다’는 새로운 진리를 새삼 실감해야 한다. SK㈜는 휘발유의 경우 리터당 8원을 더해 1,303원, 경유는 18원을 더해 841원으로 각각 올렸다. 몇 년 전 만 해도 기름값 5만원 대에 충분히 주행할 수 있었던 이동 거리가 이제는 7만원 대에도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고속도로에 돈을 뿌리고 달리는 셈이다.

승용차도 달리는데 버스와 지하철은 과연 가만 있을까. 서울시가 7월 1일부터 시내버스 체계를 전면 개편하면서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대중 교통 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어 총선을 앞두고 억?좆?공공 요금이 줄줄이 오를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아 보인다.

- 물가불안 지속, 내수시장 초호화 지경

물가불안 속에서 썰렁하기는 시중 백화점이나 재래시장이나 수도권 상가지역이나 매 한 가지다. 총선이 끝나면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했던 봄 경기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썰렁함만이 상점가를 가득 ㅏ李?있다. 최악의 내수 부진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으면서 서민들이 주로 찾는 내수 시장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은 꼴이다.

동대문 시장에서 의류도매업체에서 근무하는 황쥬리(34)씨는 “2년 전만 해도 지방 상인들의 버스가 하루 100여대는 왔지만 지금은 주차장이 텅 비는 것이 보통”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20년 넘게 의류가게를 운영해온 박모(54)씨는 “요즘 밤새 장사를 해 봐야 전기 요금을 벌기도 힘들다”며 “장사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서민들의 체감경기를 진단하기 위해 새로 개발한 시장경기실사지수(MSI)에 따르면 2분기 MSI는 45로 기준치(100)를 크게 밑돌았다. MSI는 서울과 6대 광역시 재래시장 상인 720명을 대상으로 체감경기 전망을 면접, 조사한 결과를 지표화한 것. 지수가 100이상이면 향후 경기가 지난 분기보다 호전됐다고 보는 상인이 더 많다는 뜻이며, 지수가 낮을수록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는 의미다. 서울의 경우 MSI 48, 부산 38, 인천 20, 대구 46, 광주 81, 대전 24 등 전 지역이 모두 기준치를 크게 밑돌며 재래시장의 체감경기는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 백화점 업계도 불황 늪에서 허우적

이 달 들어 봄 정기세일 행사를 마친 백화점 업계 역시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4월에 17일간 세일행사를 가진 백화점들의 1일 평균 매출이 지난해 보다 9.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백화점의 핵심 품목인 남녀 정장류와 잡화 등은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 들어, 내수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수불황의 골이 너무 깊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 백화점의 경우, 일 평균 매출이 지난해 대비 8.9% 줄었다. 현대백화점은 같은 기간 9.8% 떨어졌고 신세계 백화점은 6.7% 감소했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세일기간 일평균 매출이 지난해 대비 4.5% 줄었다. 백화점은 최근 ‘포스트 세일전’에 다시 돌입하면서 연중세일이라는 거침없는(?) 그들만의 위력을 과시하고 나섰다. 혼수 특수를 노리는 판촉 행사가 한창이다. 그러나 예상 결과는 그렇게 신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백화점 업계의 고민이다.

총선에서 서로 승기를 잡았다고 입을 모으는 여야 모두가 “우선 민생을 챙기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부르짖는다. 하지만 유가ㆍ원자재가 급등과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물가 불안에 떨며 어두운 터널 속에서 끝 모를 경기 침체에 허덕이는 서민경제는 과연 언제 밝은 봄 햇살을 볼 수 있을 지, 깊은 통찰이 필요한 시기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 2004-04-27 21:48


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