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테크가 돈 버는 재테크보다 인기, 절약 붐 장기화 예상

'왕소금' '짠돌이'의 新자린고비 열전
절약테크가 돈 버는 재테크보다 인기, 절약 붐 장기화 예상

교통수단은 지하철, 점심은 도시락, 휴대폰 사용료는 한달 3,500원….

‘사람이 우째 좁쌀 같아서…’ 실눈 뜨고 쳐다볼 것 없다. 절약은 지지리 궁상맞고 초라한 것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돈 안 쓰는 ‘절약테크’가 돈 버는 재테크보다 인기가 높다.

인터넷 다음까페 ‘짠돌이’(cafe.daum.net/mmnix) 운영자 이대표(29)씨. 이름처럼 가히 국가 대표급 왕소금으로 통한다.

“우리나라 직장인 중에 한달 생활비를 10만원 쓰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게. 게다가 10원, 20원 아낀 돈으로 2층짜리 전원주택을 혼자 힘으로 지은 나 같은 20대 직장인이 있다면 손을 번쩍 들어보게.” ‘위풍당당’ 26만 명의 짠돌이와 짠순이 회원을 거느린 ‘대왕소금’의 외침이다.


- 가계부 작성이 절약의 첫걸음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철학 논리를 편다. “먼저 자기 자신의 소비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모든 절약의 기본이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는 꼼꼼한 가계부 작성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5년 전 “돈을 아껴 ‘그림 같은’ 집을 장만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용돈 가계부를 처음 적었던 그는 깜짝 놀랐다. 어디로 흘러갔는지 모르는 ‘틈새’ 지출이 무려 100여 만원. 그야말로 ‘그림 같은 집’이 꿈으로 끝날 뻔한 함정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짠돌이 생활에 뛰어들었다. 이후 “거짓말처럼 한 달 무려 120만원에 달하던 용돈이 단돈 10만원으로 줄어들었다”는 게 그의 성공담이다.

지난해 8월에는 주옥 같은 절약의 비법을 엮어 ‘한국의 e짠돌이’(영진닷컴 펴냄)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압권은 휴대폰 요금을 절약한 사례. “휴대폰 분실신고를 하면 다달이 3,500원의 요금이 나가지요. 그러면 제가 전화를 걸 수는 없어도 받을 수는 있어요.” 불편하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손사래를 친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도 있듯, 용건이 있는 사람이 전화하니까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생들 사이에는 소위 ‘쿠폰족’이 뜨고 있다. 김혜민(24)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쿠폰걸’. 그녀가 어디를 가든 꼬박꼬박 챙겨가는 쿠폰 지갑 안에는 음식점, 미용실, 까페 등 종류별 쿠폰이 가득하다. “계산할 때 쿠폰 내면 민망하지 않냐고요? 다 옛날 얘기죠. 요즘엔 도리어 쿠폰 안 쓰면 바보 취급 당해요.”

가게들도 매출 준다고 박대하기는커녕 반기는 분위기이다. 김씨는 “주인들도 ‘이 손님은 우리 가게에 대해 정보를 알아보고 왔구나’ 하고 고마워 하는 눈치”라고 전했다.

남자친구와 데이트할 때는 꼭 할인카드를 이용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영화관에 가서 TTL 카드를 내면 1,500원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녀는 “두 명이면 3,000원의 돈이 굳어 유용하다”고 말했다.


- 쿠폰북 인기, 삐삐 부활 조짐도

불황이 끝을 보이지 않으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쿠폰이나 할인카드 하나 없이 소비를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제 값을 모두 주고 사면 바보 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쿠폰북에서 쿠폰을 오려두는 것은 기본이고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쿠폰을 다운로드 받기도 한다.

얇아진 남편의 지갑만큼 절약해야 하는 주부들에게는 할인점 등에서 생활용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삽지용 쿠폰이 인기다. 업소에 따라 정가의 15~20% 선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어 갈수록 호응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쿠폰북 ‘코코펀’을 발행하는 최준 대표는 “지난해 9월 쿠폰북을 내놓을 당시 7%에 불과했던 쿠폰 회수율이 지난 4월에는 24%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밝慧? 자린고비 소비가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증거다.

휴대전화에 밀려 자취를 감췄던 삐삐도 부활할 조짐이다. 무선호출서비스(012)를 제공하는 리얼텔레콤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삐삐 신규 가입 고객이 월 평균 700~800명씩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달에는 1,000명을 돌파했다.

리얼텔레콤 고객만족팀 차순진 팀장은 “휴대폰은 壺諍?월 평균 3만,4만원 정도는 요금이 나오는데, 삐삐는 월 8,000원이면 사용이 가능하니까 통신요금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가입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해석한다.

지난 3월 휴대 전화 이용을 해지하고, 삐삐에 신규 가입한 직장인 이은경(28)씨는 석 달 만에 삐삐 예찬론자가 다 됐다. “사실 처음엔 불편했죠. 그렇지만 월급도 오르지 않고 직장 생활도 언제 그만둘 지 모르는데 통신요금이라도 아껴야 할 것 같았어요. 웬만한 통화는 사무실 전화로 하면 되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공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지금은 삐삐로 바꾼 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회신은 집전화나 사무실 전화로 하면 되고, 요즘은 공중 전화가 텅 비어 있어서 이용에 별 불편이 없다는 게 사용자들의 반응이다.


- 전자제품도 DIY 시대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온라인에서는 자작(自作ㆍDIY) 가전제품도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개인들이 부품을 직접 조립해 만든 이들 제품은 브랜드 가전에 비해 모양은 다소 투박하지만, 저렴하고 실속 있어 인기다.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짬짬이 시간을 쪼갠 노력이 수입으로 돌아오니, 꿩먹고 알먹고다.

온라인 경매사이트 옥션(www.auction.co.kr)에는 최근 매일 100여 개 이상의 수제 가전제품이 매물로 올라오고 있다. 가장 인기리에 거래되는 제품은 LCD모니터. 매일 60여 개 이상의 제품이 판매되고, 이러한 자작 LCD모니터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여 월 300여 대의 제품을 판매하는 안방공장형 전문 판매자도 생겨났다.

자작 LCD모니터의 유명 판매자로 알려진 맹주현씨는 “일반 기성 제품의 불필요한 기능과 겉치장을 없애고, 대당 20만~3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인기 비결”이라면서 “레저 문화의 발달로 차량에 장착하는 TV수신 기능을 갖춘 제품을 찾는 고객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베어본 PC(외장 케이스에 메인보드, 메모리 등을 갖추고 이용자가 자신에게 맞는 부품을 구매, 자작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반제품)와 판매자가 직접 제작한 오디오용 스피커, 40만원대의 자작 프로젝터 등 상품군도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옥션 커뮤니케이션실 배동철 이사는 “실속파 구매자들에게는 자신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자작제품의 이용이 하나의 유행 소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 거품 뺀 소비, 쓸 땐 쓴다

최근 부쩍 늘어난 신세대 자린고비들은 ‘아낄 건 최대한 아낀다’는 게 원칙. 굴비 먹기가 아까워서 무조건 천장에 매달아 놓고 쳐다만 보던 옛날의 구두쇠와는 다르다. 예컨대 영화도 보고, LCD도 구입하고, 외식도 하는 등 누려야 할 생활은 충분히 향유하면서도 소비의 거품을 뺀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민훈 연구원은 “아예 안 쓰는 게 아니라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게 신 자리고비의 특징”이라며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향후 5~10년 간은 이런 절약 붐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6-02 09:58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