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발족, 독서 통해 경영능력 배양시키는 '책읽는 CEO들'

MBS 경영자 독서모임 - 독서경영으로 기업 경쟁력 "UP"
1995년 발족, 독서 통해 경영능력 배양시키는 '책읽는 CEO들'

“책에서 보면 본인은 배우이지 전문적 경영인은 아니라고 몇 번 강조하셨는데, 실질적으로는 상당한 CEO의 반열에 드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 회사 분위기가 자유롭다, 창의적이다, 알아서 잘 한다는 점을 강조하시고 자랑도 하셨더라구요. 일반 제조업의 경우 분위기가 딱딱해지기 쉬운 데다 요새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더욱 가라앉기도 하는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나름대로의 비결이 있다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생략) 저희 회사는 처음부터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어요. 각 파트별로 미팅 약속들이 잡혀 있으니 그것만 지키면 되고, 내일이 공연인데 준비가 안돼 펑크 나는 일만 없으면 되니까. 복장은 대표부터 이러고 다니니,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사람은 없습니다.

직원들을 뽑을 때도 저는 학벌 같은 것보다는 얼마나 창의력이 있나를 면접 기준으로 삼습니다. 서울대를 나왔든, 고등학교를 졸업했든, (학력은) 아예 보지 않구요. 면접을 볼 때 얼마나 끼가 있는지,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는지를 봅니다.

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면접 때 일입니다. 두 명은 좋은 대학 나왔고, 한 명은 전문대를 나온 친구였는데, 전문대 나온 친구가 면접 끝나자마자 ‘ PMC 만세! 난타 만세! 송승환 만세!’라고 외치는 겁니다. 당장 뽑았죠. 그 친구 정말 일 잘합니다.”

몇 달 전 어느 월요일 밤, 어진 안국약품 사장과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가 주고 받은 질문과 답변 내용을 살짝 재구성해 봤다. 송 대표는 한국형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로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탤런트 출신 공연 제작자. 하지만 이날은 ‘세계를 난타한 남자, 문화 CEO 송승환’의 지은이 자격이었다. 그의 생생한 경험담을 직접 듣고 토론하기 위해 모인 ‘중량급 청강생’들 앞에서 강의를 펼친 것.

- 산업정책연구원 내 전문프로그램으로 정착

매주 월요일 저녁 어스름이 내려 앉을 무렵 서울시 중구 을지로 1가의 하나은행 본점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은행 업무는 이미 끝난 시각. 뭔가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상황은 더욱 궁금해진다. 제법 낯이 익은 명사들을 비롯해 재계의 최고경영자급 인사들이 적잖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무슨 일일까? 이들은 곧장 21층 대강당으로 향하더니 제각기 자리를 찾아 앉는다. 오후 7시 정각. 그리곤 가방에서 책을 한 권씩 꺼내 펼쳐 든다. 모두 같은 책이다.

이 특별한 회합의 명칭은 MBS(Management Book Society). ‘경영자 독서 모임’이다. 1995년에 발족했으니 벌써 10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시작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1990년대 중반 경제계에서는 기업 경영자들은 물론, 임직원들도 공부를 통해 능력을 배양해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는다는 분위기가 점차 퍼져 나가던 중이었다. 당시 산업정책연구원(IPS) 원장이던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국내 최고경영자들이 이 같은 추세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선 친한 CEO 몇 사람을 만나 독서를 얼마나 하는지 물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회사 일로 너무 바빠서 혹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서 독서와의 거리를 좀체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독서를 통한 경영 능력 향상이라는 문제의식에 공감한 CEO들의 입에서 “이 참에 정기적으로 만나 책을 읽어 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이에 독서 모임이 만들어지기에 이른 것. 처음엔 사랑방 모임 수준이었다. 남궁석 전 정보통신부 장관, 김정태 국민은행장, 백낙환 인제대 백병원 이사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등 초창기 회원은 10명 남짓했다.

이런 조촐한 모임을 이끌면서 점차 키워 나간 주역은 조동성 교수였다. 조 교수는 MBS를 활성화하기 위해 산업정책연구원 내의 독서 전문 프로그램으로 정착시켰고, 이후 알음알음으로 회원들도 차츰 늘어났다. 단순히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의 집필 동기, 숨겨진 뒷이야기와 지혜 등을 직접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묘미에 푹 빠져 마니아가 된 회원도 적지 않다.

약 6개월에 걸쳐 한 주에 한 권씩 스무 권을 떼야 한 기수(期數)가 끝나는 만만치 않은 프로그램 일정에도 80%에 육박하는 재수강률이 그 ‘인기’를 입증한다. 조 교수는 “경제ㆍ경영 관련 도서 60%, 사회ㆍ문화 등 기타 분야 40%의 비율로 독서 목록을 정하기 때문에 실용적이면서도 폭넓은 식견을 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특히 저자와 직접 대화하면서 책의 내용을 훨씬 쉽게 이해하고 또한 입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MBS에 꾸준히 참석해 온 CEO 중엔 독서를 통해 경영에 눈을 활짝 뜬 회원도 있다. 조 교수에 따르면 사업을 막 시작하던 즈음 회원이 됐던 김창중 대보해운 대표이사는 평소 “책에서 배운 대로 경영했더니 대성공을 이루게 됐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 경영 예찬론자라고 한다.

초창기부터 터줏대감 회원으로 책을 읽어 온 신평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도 “경영 관련 전문 서적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 문학, 과학 등 경영인들이 갖춰야 할 교양과 지식, 정보 등이 고루 짜여진 커리큘럼 덕택에 머리가 유연해지고 균형 잡힌 감각을 갖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요즘처럼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증대되는 경영 환경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의 책임을 맡고 있는 경영인들에게 MBS 같은 효율적인 책읽기는 절실하다는 믿음”이라고 덧붙였다.

- 철저한 스터디그룹 지향

현재 MBS에 꼬박꼬박 나오는 출석 회원은 대략 100명 정도. 지난 9월에 종료된 18기 멤버들을 살펴 보면 백낙환 인제대 백병원 이사장, 어진 안국약품 사장, 이강호 한국그런포스펌프 사장, 이화경 온미디어 사장, 김창중 대보해운 대표, 박용현 전 서울대 병원장, 홍성일 한국투자증권 대표, 정두호 전 LG실트론 대표 등이다. 거대 기업을 이끄는 이용경 KT 사장, 김승유 하나은행장, 김정태 국민은행장 등도 이 모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인사들이다.

간혹 MBS에 대해 재계 인사들의 그렇고 그런 친목 모임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MBS는 철저한 ‘스터디 그룹’을 지향한다. 독서 경영을 해보려는 의지를 가진 CEO들만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때문에 두 시간여 강의와 질의ㆍ토론 외에는 별도의 모임을 가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조동성 교수는 이 모임의 진지한 학습 분위기에 대해 “이제 사회는 지식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보다 지식을 어떻게 창출하느냐 하는 데서 경쟁력의 성패가 갈리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저자와 직접 토론하며 지식 생산의 노하우를 배우는 데 경영인들이 열의를 보이는 것도 그런 까닭”이라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10-27 17:28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