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심화로 쏟아지는 매물, 또 다른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

부동산 경매시장, '큰 장' 선다
경기침체 심화로 쏟아지는 매물, 또 다른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

A씨는 1998년 무렵 경매 매물로 나온 아파트 한 채를 사들였다. 6년이 지난 현재, 주판알을 가끔씩 튕겨 보는 그의 입가에서는 흐뭇한 미소가 가실 줄 모른다. A씨는 당시 경매 컨설턴트의 충고대로 입찰에 참여, 감정가 2억1,000만원(시세는 2억2,000만원)에 나온 매물을 1억9,700만원의 높은 가격을 써내 낙찰 받았다.

낙찰에는 성공했지만 불만도 없지 않았다. 감정가에 거의 근접하는 금액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매를 알선한 컨설턴트에게 편치 않은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반대다. 이따금 전화를 걸어 투자 가치가 높은 물건을 소개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곤 하는 것. 그도 그럴 것이 A씨가 사들인 아파트의 현 시세는 무려 8억원에 육박한다. 6년 만에 투자 원금의 3배에 달하는 이익을 남긴 셈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로 가장 큰 부동산 경매 시장이 최근 형성되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빚에 쪼들린 사람들의 주택, 토지가 경매에 부쳐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 경기가 불황일수록 늘어나고, 호황일수록 줄어드는 경매 매물의 속성에 비춰 보면 요즘 경기가 얼마나 나쁜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IMF 이후 가장 큰 시장 형성
경매정보업체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IMF 경제위기의 끝자락이었던 2000년에 54만4,000여건으로 정점을 찍은 경매 매물은 이후 2001년 46만여건, 2002년 30만4,000여건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나타냈다. 부동산 시장이 활황세를 타는 등 국내 경기가 완연한 상승 기류를 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3년부터는 상황이 반전됐다. 경기 사이클이 침체기로 접어들면서 경매 매물이 다시 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전체 경매 매물은 33만2,000여건을 기록했고, 올해는 11월말 현재 벌써 42만여건을 넘어선 형편이다. 강한 반등세를 연출중인 경매 매물은 내년에는 50만건 고지마저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 같은 예상이 힘을 얻는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먼저 대부분 경제 전문가들이 전망하듯 경기 침체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행정수도 이전 무산도 주요 변수다. 현지인과 외지인들이 빚을 내 사들인 충청권의 토지 중 상당수가 경매 매물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임의경매에 대한 송달 특례조항’이 올해 말로 시효가 만료된다는 사실이다. ‘금융기관 부실자산의 효율적 처리 및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설립에 관한 법률’ 아래에 마련된 이 조항은 금융기관들이 좀 더 수월하게 채권을 회수할 수 있도록 1999년 4월부터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 경매 관련 제도로서, 채무자에게 경매 신청 사실을 통보하는 즉시 경매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신속성을 골자로 한다. 채권자인 금융기관으로선 경매 기간과 절차를 줄일 수 있는 등 여러모로 이점을 가진 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의 효력이 사라지는 내년부터는 채무자가 경매 신청 사실을 실제로 통보 받았음을 법원에 알리지 않으면 경매 개시가 이뤄질 수 없게 됐다. 때문에 많은 금융기관들이 특례 조항의 효력이 남아 있는 올해 안에 무더기 경매 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매 시장에 태풍의 눈으로 작용할 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처럼 매물은 쏟아지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입질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전반적인 부동산 매매 부진과 가격 하락에다 종합부동산세 등의 여파로 인해 경매 시장에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낙찰률과 낙찰가율(감정가에 대비한 낙찰가의 비율)도 저조한 흐름을 나타내는 상황이다. 실례로 인천ㆍ부천 지역 경매 매물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연립ㆍ다세대 주택(빌라)의 경우 낙찰가율은 50%선까지 미끄러졌다. 말하자면 시세의 절반 이하 가격에 매물을 살 오獵募?말이다.


내집마련 기회, 경매공부 열기
경매 전문가들은 실수요자들에게 바로 이 대목을 주목하라고 충고한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이 좋은 조건에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또한 단기적인 차익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경매는 재테크 수단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경매 공부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경매 관련 강좌가 개설된 곳은 대개 수강생들로 꽉꽉 찬다는 것이다. 실제 경매 전문가 최고급 과정을 개설중인 디지털태인의 경우 과거보다 2배 정도 많은 수강생들이 주간반과 야간반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 회사 이영진 부장은 “IMF 때 경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한 일반인들이 요즘 다시 경매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대학생들이나 20대 후반 직장인들도 강좌를 찾는 등 경매가 대중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 경매 참여 일반인 수칙 현장조사·권리분석에 유의하라

감정가 4억원에 달하는 서울 은평구의 40평형대 빌라가 두 차례 유찰 끝에 2억9,700만원을 써낸 B씨에게 낙찰됐다. 집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B씨는 최저 낙찰가 2억5,600만원보다 4,000여만원을 더 써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B씨가 낭패감을 갖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낙찰 다음날 뿌듯한 가슴으로 빌라를 찾은 그는 “3억원에 내놓아도 안 팔리는 집”이라는 이웃의 말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던 것. B씨의 사례는 경매에 참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면교사다. 요체는 감정서와 매각물건 명세서 등 문서상의 매물 정보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매 매물은 감정에서 낙찰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특히 부동산 가격 하락기의 경우에는 시세의 흐름을 꾸준히 파악하고 있어야 예상치 못한 손해를 피할 수 있다.

이영진 디지털태인 부장은 “경매에 직접 뛰어든 일반인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현장 조사와 함께 권리 분석”이라며 “특히 임대차 등의 권리 관계를 꼼꼼히 분석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비용 지출뿐 아니라 투자된 비용을 날리는 일을 당할 수도 있다”며 경매 참가자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하지만 경매 초심자들의 경우에는 권리 분석 자체가 너무 까다롭기 때문에 비용이 좀 들더라도 컨설팅 업체 등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안전한 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경매 강좌를 듣고 나름대로 지식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막상 경매에 뛰어들어 쓴맛을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다음은 경매에 참가할 사람들이 챙겨야 할 필수 사항들이다. 1. 자신의 투자 목적을 뚜렷이 한 뒤 물건을 찾아라. 2. 자금 조달 계획을 수립하라. 3. 권리 분석과 현장 조사 등 물건 분석에 심혈을 기울여라. 4. 일반 물건과는 달리 변수가 많은 만큼 입주 계획을 잘 짜라. 5. 목표하는 수익률에 맞춰 적정 입찰가를 산정하라.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12-08 22:25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