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계 핫이슈로 부상, 취약분야 경쟁력 제고 서둘러야상호 경제번영 '큰 그림' 불구, 양국간 이익불균형 등 문제점도

2005년 타결 앞둔 한·일 FTA, 약인가? 독인가?
국내 경제계 핫이슈로 부상, 취약분야 경쟁력 제고 서둘러야
상호 경제번영 '큰 그림' 불구, 양국간 이익불균형 등 문제점도


2005년 내 타결을 목표로 한ㆍ일 양국 정부가 벌이고 있는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국내 경제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 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FTA의 파장에 대해 산발적으로 제기되던 우려의 목소리는 갈수록 세를 모으는 양상이다.

올해 한ㆍ칠레 FTA가 발효된 데 이어 한ㆍ싱가폴 FTA 협상도 11월말 타결되는 등 FTA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고는 있지만, 일본이라는 ‘무서운’ 파트너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할 상대라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ㆍ일 FTA의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는 쪽의 주장은 명쾌하다. 한ㆍ일 FTA가 맺어지면 일본에게는 득(得)이지만 한국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실(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양국의 주력 산업이 상당 부분 겹치는 데다 일본의 기술력 우위가 여전한 상황에서 관세를 철폐할 경우, 일본의 대한 수출은 크게 늘지만 한국의 대일 수출 증가는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긍정적 효과 쪽에 무게를 두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대일 무역 역조가 심화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일본 기업들과의 경쟁을 통해서 우리 경제의 체질이 개선되고 외국인 투자도 늘어나는 등 장점이 더 많다는 게 긍정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처럼 찬반 논란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당사자 격인 국내 산업계는 대체로 한ㆍ일 FTA의 조기 체결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가 한ㆍ일 FTA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도출 없이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ㆍ일 FTA 협상의 경과와 현황
당초 한ㆍ일 FTA에 대한 논의의 단초는 일본쪽 인사가 제공했다. 1998년 9월 열린 전경련 월례 모임에서 당시 오구라 주한 일본 대사가 ‘21세기를 향한 한ㆍ일 협력’이라는 강연을 통해 한ㆍ일 FTA의 타당성 검토를 위한 공동 연구를 제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ㆍ일 FTA에 대한 양국 간 공식적인 논의는 같은 해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처음 이뤄지게 된다. 방일 당시 김 전 대통령은 한ㆍ일 FTA 공동 연구 추진을 제의했고, 이에 오부치 전 일본 총리가 화답함으로써 양국 정부의 FTA 논의가 궤도에 오른 것이다.

한ㆍ일 양국 정부는 먼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아시아경제연구소를 각각 내세워 1998년 12월부터 2000년 5월까지 민간 공동 연구를 실시했고, 이어 양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대한상의와 일본 경단련 등이 포함된 ‘한ㆍ일 FTA 비즈니스 포럼’을 발족시켜 2002년 1월 한ㆍ일 FTA 조기 실현의 필요성을 천명했다. 또한 2002년 7월부터 2003년 10월까지는 ‘한ㆍ일 FTA 산관학(産官學) 공동연구회’를 가동시켜 양국 정부 간 협상의 조속한 개시를 건의하는 공동 보고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2003년 10월 양국 정상이 2005년 내 한ㆍ일 FTA 타결에 합의함으로써 마침내 시작된 정부 간 공식 협상은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국의 입장 차이가 뚜렷한 데다,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분야에서 서로 양보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지금까지 6차례 열린 협상에서 양국 정부는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를 추진한다’는 대원칙에만 공감을 표했을 뿐 세부 항목별로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측은 농산물 시장 접근, 산업 기술 협력, 비관세 장벽 철폐 등을 주요 공략 포인트로 삼는 데 반해, 일본측은 공산품 관세의 조기 철폐에 초점을 맞춘 요구를 내세워 서로 간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산업자원부 FTA팀의 고경만 사무관은 “서로 어느 정도 개방할 것인지 양허 수준에 대한 절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현재까지는 협정문의 포맷을 만들고 양국의 입장을 개진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ㆍ일 FTA 체결에 대한 일각의 우려에 대해 “양국 정상 간 합의에 따라 내년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는 있지만, 시한보다도 국익에 더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일본측의 성의 있는 카드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한ㆍ일 FTA 협상의 타결까지는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한ㆍ일 FTA 문제점과 속도조절론
한ㆍ일 FTA와 관련해 찬반론은 ‘장기적 이득’과 ‘단기적 충격’이라는 지점에서 정면 충돌하고 있다. 특히 반대론은 단기적 충격이 미래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상처를 남길 가능성을 더욱 우려한다.

송기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2월 8일 산업자원부 주최로 열린 ‘기계의 날 연합 심포지엄’에서 “한ㆍ일 FTA가 체결되면 관세 철폐로 인해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60억9,000만 달러 정도 늘 것으로 예상된다”며 “투자 유치나 생산성 향상 등의 동태(動態)적 효과를 감안해도 대일 무역수지 적자 증가폭은 4억4,0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산업 기반에 장ㆍ단기적으로 가해질 타격이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업체 중 절반에 가까운 41.5%가 ‘한ㆍ일 FTA가 체결되면 국내 산업 기반이 붕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계 산업만 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전자, 부품, 소재 산업 등 일본에 비해 열세에 놓인 국내 주력 산업 대부분이 비슷한 입장이다. 이런 까닭에 전경련 등 주요 경제단체 일각에서는 국내 산업 보호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세운 다음에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상의 한ㆍ일 FTA 체결 연기론인 셈이다.

애당초 한ㆍ일 FTA에 대한 접근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주의 무역자유화를 지지해 오다 전세계적인 지역주의 흐름에 뒤늦게 합류한 한국 정부가 ‘FTA 건수(件數)주의’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FTA를 어느 국가와 먼저 체결하는 것이 유리한지에 대한 다각적인 계산 없이 마구잡이로 협상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아세안(ASEAN), 멕시코, 인도 등 관세율이 높은 국가들과 FTA 체결을 통해 실질적인 시장 접근 기회를 확대해야지, 일본처럼 이미 자유무역을 하고 있는 선진국과 FTA를 서두르는 것은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FTA 로드맵에 비판적인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부)는 “한ㆍ일 간 협상 교착 상태가 오래 갈수록 좋다”며 “그 사이에 중국이나 아세안 국가들과 FTA를 서둘러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목표로 삼고 있는 일본과 FTA를 체결하면 국내 산업구조는 저부가가치화 쪽으로 특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정부는 FTA 추진과 연계해 국내 산업구조 조정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12-16 17:19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