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배기 기업 대거 매물로…M&A 시장 불 붙었다


스탠다드차티드은행(SCB) 나르골왈라 아시아 총괄 대표(오른쪽)가 제일은행 인수를 발표하고 있다.

“IMF 경제위기 당시 부실화했던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끝내고 대거 매물로 나오는 올해에는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초활황을 이룰 것입니다.” 올 M&A 시장을 두고 한 업계 관계자가 내놓은 낙관 섞인 전망이다. 실제로 연초부터 굵직굵직한 거래들이 성사되면서 M&A 시장은 벌써 후끈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1월 10일 미국계 펀드인 뉴브리지 캐피털이 제일은행을 영국계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 은행(SCB)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은 올 M&A 시장의 첫번째 빅딜이다. 뉴브리지 캐피털은 이번 거래를 통해 무려 1조 1,500억원의 매각 차익을 실현했다. 2000년 ‘단돈’ 5,000억원을 투자해 제일은행의 대주주로 올라선 뒤 불과 5년 만에 이룬 장사 실적이다.

바로 다음날에는 옛 대우 계열사인 대우종합기계가 두산중공업에 넘어감으로써 이틀 연속 대형 M&A가 성사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재정경제부 산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11일 두산중공업 컨소시엄과 자산관리공사 간의 주식 양수도 계약 체결안을 승인, 대우종합기계에 새 주인을 찾아 줬다. 매각 가격은 향후 정밀 실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최소 1조6,000억 원대에서 최대 1조8,000억 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대우계열사·진로 등 우량회사에 '군침'
여기까지는 그러나 워밍업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M&A 빅딜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왔거나 매각이 예정된 기업은 제조업체와 금융기관 등을 합쳐 상당수에 달한다. 재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알짜배기 회사들도 수두룩하다.

그 중에는 대우그룹의 해체로 뿔뿔이 흩어졌던 옛 대우 계열사들도 적잖이 포함돼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수년 동안의 워크아웃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새 주인을 기다리는 옛 대우 계열사들은 대우종합기계 외에도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조선해양, 대우정밀 등 대부분 과거 대우의 간판 구실을 하던 기업들이다.

각 업계에서 선두권을 달리는 우량 회사들이 대거 ‘세일’에 들어가는 것도 올 M&A 시장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특히 소주 업계 부동의 1위 업체인 진로와 물류 업계의 강자인 대한통운, 과거 현대그룹의 주력 회사였던 현대건설 등의 향배는 투자자들의 이목을 한 눈에 모으고 있다. 외환은행, 우리은행, LG카드 등 대형 금융 회사들도 뉴브리지 캐피털의 ‘제일은행 대박’에 힘입어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는 물건들이다.

이처럼 알짜배기 회사들이 상당수 매각 목록에 오르면서 올 M&A 시장은 금액 면에서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 M&A 전문업체의 관계자는 “IMF 때 부실 기업으로 낙인 찍혔던 상당수 회사들의 구조조정이 대부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면서 “진로나 대한통운 등 큰 건들의 매각 작업이 올해 안에는 대략 완료될 예정이어서 M&A 시장은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올해 대형 M&A 건들이 이뤄지고 나면 향후에는 금액면에서 M&A 시장이 다소 줄어들 수는 있지만, 꾸준히 늘어나는 중소형 M&A 거래가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M&A 시장의 규모는 2001년 13조5,000억여원, 2002년 15조3,000억여원, 2003년 32조8,000억여원 등으로 최근 수년 동안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 왔다. IMF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추세다. 과거에도 M&A는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일상적인 경제 활동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알짜 기업들 상당수가 거액의 펀드를 운용하는 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가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IMF 직후에는 국내 M&A 시장이 거의 외국인들의 독무대로 전락한 적도 있다. 지난 연말 사모투자펀드(PEFㆍPrivate Equity Fund)가 오랜 논의 끝에 국내에 도입된 것?바로 이 같은 외국인 잔치판을 바꿔 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즉 토종 자본을 외국 자본의 대항마로 육성해 국부 유출을 막아보자는 계산이다.

두산중공업에 매각된 대우종합기계

PEF 활성화 땐 M&A도 호황
전문가들은 일단 PEF가 M&A 시장에 미칠 긍정적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M&A업체 대표는 “지금까지 국내 M&A가 태동기를 거쳐왔다고 한다면 올해는 M&A가 본격화하는 진정한 출발점”이라며 “그 핵심에는 바로 PEF가 있다”고 강조했다.

PEF는 특정 기업의 지분을 10% 이상 매입한 뒤 경영에 참여해 회사 가치를 높여 되파는 펀드로서, 2004년 12월 이후 은행권과 증권ㆍ자산운용업계를 중심으로 설립 붐을 타고 있다. PEF들의 규모는 적게는 수백억 원대에서 많게는 2,000~3,000억 원대. 수십~수백억 달러를 주무르는 외국계 큰 손에 비하면 아직 작은 수준이지만 몇 년 안에는 전체 규모가 4~5조원 대로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한 M&A 전문가는 “1,000억원 정도의 PEF를 만들면 ‘지렛대 효과’ 덕에 3,000~4,000억원 대의 거래도 할 수 있다”며 “PEF가 활성화하면 M&A 시장도 덩달아 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PEF의 성공 가능성에 우려를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물론 있다. 자금 조달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보수적인 자금 운용을 하는 국내 기관 투자가들의 속성을 감안하면, 이들 큰 손의 돈을 유치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로선 PEF를 제대로 운용할 만한 전문 인력이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M&A의 한 관계자는 “PEF가 원활하게만 돌아가 준다면 M&A 시장이 상당히 커질 것”이라면서도 “자금 조달이나 운용 전문가들의 확보가 선결되지 않으면 금세 한계를 드러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1-21 10:53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