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과 보험은 지구력, 자기와의 싸움"업계에 신선한 바람 일으킨 '마라톤 경영''新나눔 경영'으로 사회적 불신 치유에 앞장

[인터뷰] 구자준 LG화재 사장
"마라톤과 보험은 지구력, 자기와의 싸움"
업계에 신선한 바람 일으킨 '마라톤 경영'
'新나눔 경영'으로 사회적 불신 치유에 앞장


LG그룹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의 동생 구철회 회장의 4남 4녀 중 막내 자준(55ㆍLG화재 사장)씨. 그는 50세에 사장이 됐다. 창업주 가족치고는 좀 늦은 나이다. 더욱이 2000년 그가 처음으로 맡은 회사는 퇴출 위기를 맞고 있던 럭키생명이었다. 그는 ‘위기의 회사를 어떻게 살릴까? 무슨 힘으로 직원들을 끌고 갈까?’ 고민했다.

갑자기 CEO가 된 그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 막연했지만 답은 함께 새벽을 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50의 나이에 그는 마라톤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도 직원들도 힘들었다. 새벽 바람을 가르고 달리면서, 그들은 하나같이 점차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마라톤 뒤 설렁탕 회식 자리에서 서로의 눈빛을 읽었다. 조직은 변화하기 시작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사라졌다. 그의 ‘마라톤 경영’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지금 그는 업계 3위를 달리는 LG화재 사장이다.

구 사장은 보험업계 CEO중 보기 드물게 전자공학도(미 미주리대ㆍ한양대 전자공학)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미사일 개발 현장에서 20년 가까이 보낸 엔지니어였던 그는 지난 1999년 LG그룹의 계열 분리로 보험업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대표적 보험 경영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1월 10일 서울 종로구 다동 LG화재 본사 사장실에서 만난 그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젊은 50대’. K2봉 등정ㆍ극지 탐험 등 강인한 스포츠맨의 인상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온화한 동안(童顔)에 격식 없는 제스처가 기자를 편하게 한다.

산은 표현하기 어려운 성취감 안겨줘
-고봉 등정, 극지 탐험 등 극한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이미 산악인 박영석(42) 대장의 2001년에 K2봉(8,611m) 등정, 2003년엔 남극 탐험에 원정대장으로 나섰고, 특히 지난해 여성 산악인 오은선(39)씨가 남극 최고봉인 빈슨매시프봉(4897m)을 정복할 때 원정대장으로 동행하셨다가 막 돌아오셨는데 원정 이야기 좀 해 주시죠.

“남극 원정대는 남극 패트리어트 힐 기지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칠레 남단 푼타아레나스에 잠시 머물면서, 우선 원정을 위한 몸 만들기를 합니다. 대원들은 남극 베이스 캠프에서 대개 영하 55도에 초속 40m가 넘는 강풍(블리자드)을 뚫고 1,300㎞ 가까이 강행군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먹고 몸을 불려 놓지 않으면 안 되죠. 그런데 먹어도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먹어요. 그 곳에선 악천후로 비행기가 못 뜰 때가 다반사인데, 만일 비행기가 조금만 늦게 떴더라도 경비에 차질이 생길 뻔했어요(웃음). 행군 중 오은선 대원의 가이드가 크레바스(빙하 속에 생긴 깊은 균열)에 빠져 아찔한 순간도 있었죠. 발톱이 빠지는 등 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원정을 완수한 뒤 누리는 그 뿌듯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죠. 또 내달에는 북극점 원정에 원정대장으로 동참합니다. 2001년 K2봉 등정 땐 베이스 캠프가 아니라 해발 6,500m에 위치한 제2 캠프까지 올랐습니다. 당시 발톱이 빠지고 고생도 꽤 했어요. 그러나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만큼 남는 것도 있는 거죠. 서울의 안락한 사무실서 느낄 수 없는 것들이죠. K2봉 등정서는 기쁨도 슬픔도 함께 맛 보았습니다.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등정에 성공해 웃었지만, 하산 땐 박영도(30) 대원을 잃고 울었습니다. 그를 생각하면 지금도 정말 가슴 아픕니다. ”

-‘마라톤 경영’이란 것을 처음 주창했고, 또 ‘마라톤 CEO’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특별히 경영인으로서 마라톤을 좋아하시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험준한 고봉 등정이나 극지 탐험과 마찬가지로 마라톤도 정신력은 물론이고 체력에 대단한 자신감이 없으면 젊은 사람들도 쉽게 명함을 내밀기 힘든 것인데…

“사내 야구단서 야구도 하고 테니스에 빠져보기도 하고 하여튼 젊어서부터 운동이라면 다 좋아했어요. 특히 극기 스포츠는 정신의 힘, 열정의 스포츠란 점에서 매력이 있어요.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럭키생명 CEO가 되고 나서부터인데, 해 보니 사실 마라톤이란 게 보험과 닮은 점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마라톤 경기란 게 한번 뒤쳐지면 정말 따라잡기 힘들지 않습니까. 총 42.195㎞ 중 100m, 200m 정도는 별 것 아닌 듯 해도 실제 경기에서 한 번 생긴 격차를 좁히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특히 장기성 보험은 복리식으로 혜택을 누적해 나가는 상품인데, 그 속성이 꼭 마라톤과 같습니다. 한 번 처지면 따라잡기에 엄청난 시간이 필요해요. 뒤 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출발부터가 중요합니다. 철저한 준비와 기초 체력이 필요해요. 보험도 마찬가지죠. 그냥 무턱대고 고객을 찾는다고 해서 계약을 따 낼 수는 없죠. 고객에 대한 사전 정보 분석 등 철저한 연구가 첫 단추입니다. 보험 설계사가 고객을 찾으면 대개 거절부터 당하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지구력과 자기와의 싸움 입니다. 중도 포기하면 보험이나 마라톤이나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라톤 코스도 오르막 내리막 승부가 있듯 보험업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순발력이 있어야 해요. 이렇듯 기초, 지구력, 적응력, 자기와의 싸움 등 보험업 자체가 마라톤 입니다.”

-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마라톤 대회 참가 등 마라톤 풀 코스를 6차례나 완주하셨는데 지금껏 본인의 최고 기록은 어느 정도 되는지. 마라토너로서 평소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또 마라톤을 통한 ‘신(新)나눔 경영’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풀 코스의 공식 최고 기록은 4시간 28분입니다. 욕심내지 않고 완주하는 데 의미를 두고 뜁니다. 뛰는 도중 힘든 고비도 오지만 골인하는 내 모습을 보려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중도 포기 못하죠. 요즘은 골프를 자주 치는데 마라톤을 하려면 그것만으론 부족해요. 그래서 주중에 2, 3차례 러닝을 하고 주말엔 10㎞씩 뜁니다. 마라톤을 통한 신(新) 나눔 경영이란 기업이 정도(正道) 경영을 해도 욕을 먹는 한국적 상황을 감안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시도한 것 입니다. 여러 방식이 있지만, 저는 우선 작년 베를린 마라톤 대회 참가 때부터 1m 달릴 때마다 100원씩 적립해 교통 사고 유자녀 등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LG화재가 주최하는 올 코리아 오픈 마라톤 대회부터 사원들도 많이 참여할 것으로 압니다. IMF이후 한국 사회는 가계 뿐 아니라 기업 차원의 양극화 현상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치유하는 데 가장 큰 적은 불신입니다. 닭이 먼저이냐 달걀이 먼저이냐를 따지기 전에 기업은 우선 정도 경영, 나눔 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관료주의적 시스템 허문 디지털 마인드
- 핵심 전문 인력 육성에 특별한 경영 철학을 가지고 특히 지난해 LG화재가 미 코넬대학에 최고 경영자 과정을 개설해, 직접 코넬대 학생 등을 상대로 강단에 서 화제가 됐습니다. 또 ‘눈 도장 찍지 말라’며 사장이 직접 휴대폰 결제하는 등 업무의 디지털화와 새로운 기업 풍토를 만드셨는데.

“코넬대학에서 한 강의는 ABA(Asian Business Association) 주최로 한 것인데, 동양계 회사의 CEO로서는 처음입니다. 사실 전문 인력 양성은 회사의 미래와 다름 없습니다. 특히 보험업계는 수만명의 인력을 직ㆍ간접적으로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 부문의 투자 없이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또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직원들의 평가에서 친소가 개입되지 않는 능력 인사를 위한 것 입니다. 휴대폰 결제도 같은 선상이고요. 최고 경영자에게 자주 결제 받고 ‘눈 도장’ 찍어 출세하는, 소위 ‘줄서기 풍토’를 없애겠다는 의지입니다. 또 동시에 사장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자칫 관료주의적으로 흐르기 쉬운 조직 분위기가 좀 더 유연해 질 수도 있고요. 관료주의적 시스템으로는 디지털 혁명 시대에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다들 바빠야 하는 간부들이 결제 받으려 사장실 앞에 줄 서 있는 모양은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죠. 휴대폰 결제는 간부들의 디지털 마인드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 LG화재 대표이사로 취임하신 지 3년째인데, 2003년에 ‘비전 2010’이라는 경영 목표를 선언했습니다. ‘비전 2010’은 2010년엔 LG화재가 ‘1등 보험 금융 그룹’으로 자리잡겠다는 의지인데 지금까지 성과는 어떻습니까.

“2002년 이후 업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장으로 있은 3년은 상품 등의 구조 개혁을 통해 기업 내실화에 주력했습니다. 그 성과가 지금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이번에 LG화재가 업계 3위의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추세를 유지한다면 2010엔 명실공히 업계 2위 자리를 굳히는 데 자신이 있습니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1-21 11:01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