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사장으로 승진 발령, 3세대 경영·후계 구도 윤곽

현대차 그룹 '정의선 시대' 개막
기아차 사장으로 승진 발령, 3세대 경영·후계 구도 윤곽

현대차 그룹에 ‘정의선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왕성한 경영 능력으로 현대차를 글로벌 톱5 반열에 올려 놓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후계 구도를 구축하는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3월 1일자로 단행된 사장단 인사에서 정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현대차는 또 정 회장의 조카인 정일선 비앤지스틸 부사장(정주영 회장의 4남 고 정몽우씨의 아들)과 셋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부사장도 각각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로써 현대차 그룹의 주요 계열사에 대한 후계 구도가 윤곽을 드러냈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현대차 측은 특히 정의선 사장의 승진 배경에 대해 “정 사장은 탁월한 현장 감각과 경영 감각으로 기아차를 성장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며 “실무부터 이론까지 자동차 사업에 필수적인 경영자 자질을 안팎으로부터 검증 받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 인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통상 재벌 후계자들의 경영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정 사장의 경우도 지금까지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대차 내부에서는 정 사장이 충분히 경영 전면에 나설 만한 능력과 자질을 갖췄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에 1999년 입사한 정의선 사장은 자재, 구매, A/S, 영업, 기획 등 생산 파트를 제외한 전 부서를 거치면서 광범위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03년 기아차 기획실장을 맡으면서부터는 경영 일선에서도 뚜렷한 실적을 올렸다는 평가다.

특히 기아차가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슬로바키아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부지 조사에서 인허가, 공장 배치도까지 총괄한 것은 정 사장이 자신의 경영 수완을 입증한 대목으로 거론된다. 또한 정 사장은 신차종 개발 등 주요 사업계획에도 깊이 관여하면서 기아차의 재도약 발판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현대차·기아차 부자 역할 분담 분석
이에 따라 재계 일각에서는 향후 얼마 동안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이, 기아차는 정의선 사장이 챙기는 부자 역할 분담 체제가 가동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정 사장은 2월 5일 기아차 지분 1%를 인수한 바 있는데, 이를 두고 현대차 측은 “책임 경영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이뤄진 일”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 사장의 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분 구조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재 정 사장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그룹의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아주 미미한 양만 보유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대권’을 물려 받으려면 향후 지분의 대거 이동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정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엠코, 글로비스, 본텍 등 비상장 계열사의 향배가 경영권 승계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핵심 계열사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이 회사들의 덩치를 키워 실탄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그룹의 공장 및 연구소 등을 건설하고 유지ㆍ보수하는 회사로 2002년 설립된 엠코의 매출액은 불과 2년 만에 94억원에서 지난해 4,138억원으로 폭증했다. 이 회사는 또한 얼마 전부터 아파트 사업에도 뛰어드는 등 외연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글로비스 역시 국내 자동차 탁송 등 그룹의 물류를 독점하면서 설립 2년 만인 지난해 매출액 8,000억원 대의 중견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자동차 전자 부품 업체인 본텍의 사세도 일취월장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등에서는 현대차 그룹이 이들 3개사를 집중적으로 밀어 주는 행태 등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비상장 계열사를 활용한 우회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지적이다. 삼성 그룹의 경영권 째?작업에 비판을 가했던 참여연대 측은 “계열사 간 순환 출자 구조와 함께 친족 경영 체제 강화로 인해 현대차 그룹의 지배 구조 상의 위험은 더욱 증폭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또 이번 인사를 통해 정의선 사장이 계열사의 요직을 두루 꿰찬 데 대해서도 “과도한 겸직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저해할 소지가 있고 이해 상충의 문제도 낳는다”고도 지적했다. 삼성의 경우처럼 현대차도 참여연대의 감시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 정의선 사장은

정의선 사장은 1994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곧 바로 일본 이토추 상사의 뉴욕 주재원으로 2년 간 근무하면서 국제적인 감각도 익혔다. 1999년 현대차에 입사한 뒤로는 자재본부 이사, 구매ㆍASㆍ경영지원사업부ㆍ기획총괄본부 상무를 거쳐 2002년에 국내영업본부 전무에 올랐다. 이어 기아차로 옮겨 2003년에 기획실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지난 3월 기아차 사장에 임명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정 사장은 젊은 나이에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지만 소탈하고 푸근한 성품으로 임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의 경영 철학을 이어 받아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는 전언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3-09 15:30


김윤현 기자 unyon@hk.co.kr